내가 자라난 곳은 인구 십만이 조금 넘는 지방 소도시이다. 인구가 많지 않으니 한 다리 건너면 친구 아버지이고, 또 한 다리 건너면 형 동창인, 그런 도시였다.
그런 도시의 특징은 활자화한 법률보다, 늘 인간적인 관계가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고교 시절, 일군의 학생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 눈이 갑자기 팬더 눈으로 변한 것을 보고 격분, 경찰서까지 동행을 했다.
당시, 아버지의 기세란 뭐랄까, 당장이라도 피의자들과 일 대 십칠로 '맞짱'을 뜰 것만 같은, 그런 뾰족함이 느껴졌다. 한데, 웬걸. 경찰서 조사실에서 피의자들의 아버지와 만난 아버지는, 대뜸 정겹게 악수부터 나누었다. 아, 이 과장님, 아드님이셨군요.
어, 걔가 정 사장 아들이었어? 그런 인사를 주고받다가, 아버지들은 다시 조서를 작성하던 형사에게도 인사를 청했다. 김 형사네 이번에 보일러 공사한다며? 아버지들은 아예 형사 옆에 철제의자를 갖다 놓고, 이것저것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잠깐 사건 이야기를 했다. 이걸 어쩌죠? 형사가 묻자, 아버지들이 대답했다. 애들 싸운 걸 갖고 뭘. 지역사회에서 그런 일로 얼굴 붉히면 되나? 아버지들은 너나없이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멀뚱멀뚱 팬더 눈으로, 그런 아버지들을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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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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