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어이쿠. 어머 어머 떨어질 것 같아."
한 두번 (줄을) 탄 것도 아닐 텐데 흐르는 땀방울에 흠뻑 젖은 옷,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하지만 강 위에 걸린 외줄을 타고 가는 발은 '사뿐사뿐' 가볍기만 하다. 강변에 모인 1,000여명의 시민들은 아슬아슬한 모습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러댔다.
3일 오후 한강에 전 세계 '왕의 남자'들이 모여 줄타기를 겨뤘다. 세계 최초로 열린 '한강횡단 제1회 세계 줄타기 대회(The 1st World High Wire Championships in Seoul)'. 한강 양화지구 선착장~망원지구 1㎞ 구간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중국 일본 미국 에콰도르 등 9개국에서 온 세계 줄타기 고수 18명(여성 4명 포함)이 참가,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줄 타기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이들이지만 처음 도전하는 장거리 레이스에 어느새 호흡은 거칠어졌다.
첫번째 출전선수는 권원태(41)씨. 영화 <왕의 남자> 에서 감우성의 줄타기 대역을 맡았던 주인공이다. 갈색 두건에 흰 한복 위로 청색 조끼를 입은 그는 길이 8m, 무게 10㎏ 철봉을 들고 높이 22m 철골 구조물에 연결된 30㎜ 굵기의 와이어(쇠줄) 위로 당당히 올랐다. 올라서기가 무섭게 달렸다. 관람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대회 직전 인터뷰에서 "바람이 관건이다. 우승은 꿈도 안 꾼다. 완주가 목표"라고 말했다. 왕의>
실제로 이날 서울지역은 초속 3~5m지만 강 위의 체감풍속은 훨씬 강했다. 권씨의 기록은 '17분6초77'. 완주한 후 힘이 부쳤는지 곧바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린 그는 "믿기지 않는다. 많은 분들의 성원으로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같다"며 웃었다.
권씨에 이어 출전한 3번째 선수인 페드로 카릴로(미국ㆍ59)는 '17분5초7'로 권씨 기록을 1초 이상 앞당겼다. 그는 "유니버셜 M.G.M 스튜디오에서 스턴트 생활 등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4번째 출전한 압두사타엘 우지압둘라(중국ㆍ20)는 "줄이 너무 낮다. 챔피언 트로피를 놓치지 않겠다"고 장담한 후 실제로 '11분22초'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1위에 올라섰다. 성인이 땅 위를 뛰어가는 속도였다. 그러나 그는 "5일 출전하는 '아딜리'가 내 기록을 깰 것"이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장면도 있었다. 2번째 선수로 나선 알렉세이(러시아ㆍ33)는 목표지점을 불과 50m 남겨두고는 한강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출전자 왕휘(중국ㆍ44) 역시 체력이 떨어졌는지 중간 지점에 이르자 포기하고 강으로 뛰어 내렸다.
4,5일 출전을 앞둔 선수들 가운데 헝가리의 라즐로 앤탈 시멧(49)과 올가 시멧(32ㆍ여)은 부부 사이다. 662m 세계기록 보유자인 아딜리(중국ㆍ36)는 우지압둘라의 '줄타기 스승'이다.
런던 템스강을 횡단한 제이드 킨더 마틴(미국ㆍ31), 높이 10.6m 길이 11m 횡단 기네스 기록 보유자인 오이에다(에콰도르ㆍ53) 등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주최측은 이번 대회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영국 기네스북 본사로 보내 세계 최장 줄타기 기록 등재를 추진키로 했다.
이번 대회 우승자 상금은 1,500만원이며, 준우승과 3위는 각각 1,000만원, 500만원을 받는다.
김종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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