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한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새 잎이 돋아나는 은행나무 가지들이 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웃음소리에 놀라 방으로 달려간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나무 잎은 애기 때부터 어른 은행 잎 모양이구나."
가족들은 창 밖의 은행나무를 보았다. 작은 애기 잎들이 뾰죽뾰죽 어른 잎의 형태를 갖춘 채 다투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가족들도 할머니처럼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정말 은행 잎은 나올 때부터 어른 은행 잎 모양이네."
● 치매할머니의 굉장한 발견
할머니가 굉장한 발견을 한 그 화창한 봄날, 가족들은 웃고 또 웃었다. 웃음은 이웃들에게 전염됐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지나가다 은행나무를 보면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앙징스런 애기 잎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단풍 잎도 애기 때부터 어른 단풍 잎 모양이네"라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려주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그들은 전화를 걸며 한참 깔깔 웃었다.
애기 은행 잎 모양을 관찰하여 웃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그 할머니는 누구일까. 연세는 89세, 뇌졸중 후유증으로 치매증세가 있으며, 거동이 힘들어서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분이다.
그 분의 며느리는 "치매환자들은 난폭형, 우울형, 무감각형, 쾌활형 등으로 차이가 있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다행스럽게도 명랑형이에요. 가끔 기발한 발견, 어린아이 같은 상상으로 즐거워하신답니다"라고 말했다.
치매는 발병의 원인과 증세가 모두 다양하다. 정신에만 문제가 있을 뿐 다른 위험은 없어서 가족들이 잘 보살피면 큰 지장 없이 생활하는 경우도 있고, 24시간 옆에서 지키며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심한 치매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치매 환자들은 생생하게 희노애락을 느끼고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 한다. 명랑형인 '은행나무집 할머니'뿐 아니라 우울형 중에도 생생한 감정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셨던 한 주부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감탄으로 빛나는 신록
"할머니는 우울형과 난폭형이 겹쳐진 경우였어요. 할머니의 행동을 제지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간병인의 팔을 물기까지 하셨지요.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좀 불행했던 것 같은데, 치매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괴로워하셨어요. 슬픈 기억에 갇히면 우울해져서 며칠씩 잡수시지도 않고 계속 우셨어요."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애간장이 끊어질 것처럼 슬퍼서 듣는 이들도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를 힘겨워 하던 간병인도 울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맏며느리가 할머니를 안고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어요.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라고 달래면 할머니는 겨우 울음을 그치곤 했다. 난폭해지는 순간에도 며느리가 달래면 안정을 찾았다. 그 며느리는 할머니가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고, 교감의 수단은 사랑과 신뢰였다.
명랑형 할머니의 애기 은행잎 이야기, 난폭형 할머니의 애끊는 울음은 절망적으로만 보이던 치매의 세계에서 체온을 느끼게 한다. 치매 환자들에게도 관찰과 발견이 있고, 경탄과 유머가 있고, 슬픔과 위안이 있고, 사랑과 신뢰가 있다.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 치매에 걸린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 누구도 나는 치매에 안 걸린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렇게 불가항력적이고 어두운 치매의 세계에서 "애기 은행 잎도 어른 잎과 똑같이 생겼네"라고 신기해 하는 할머니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5월의 신록 속에 빛나는 그 감탄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그리고 치매의 세계에 귀 기울이게 한다.
장명수 본사 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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