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 중 현지에서 항공권을 바꾸는 일 등으로 우리 항공사에 들려야 할 때가 있다. 서툰 외국어로 사람들 만나며 긴장과 불편 속에 지내다 한국말로 통하는 손 빠른 직원들을 대하면, 얼마나 푸근하고 편안한지 모른다.
객지에서 떠돌다 고향 집에 온 듯한 안도감, 같은 민족을 만나는 동질감 같은 느낌으로 서로를 반가워 했던 경험이 여러 번이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삶과 문화의 뿌리와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다. 언어로도 그렇지만 고향의 사투리도 마찬가지다.
■ '구수한 사투리'라는 말에서는, 그 후각적 뉘앙스부터 금세 와 닿는다. 같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끼리는 초면의 거리감도 타지 사람들과는 다르다.
대선 운동이 한창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에 대한 요즘 구설수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각종 연설과 행사를 위해 남부 지역을 방문하거나 흑인을 상대로 할 때, 그는 유독 남부 사투리를 쓴다고 한다.
연설을 하는 입장에서 청중들과 가까워 지기 위해 여러 기법을 동원할 수야 있지만, 힐러리의 남부 사투리를 보는 시각은 평범한 연사의 노력으로 봐주기 어려운 모양이다. 다른 곳에서는 의당 '표준말'을 쓰니 더 그런 듯하다.
■ 흑인들이 모두 남부 사투리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흑인들의 억양은 보통 남부 지방 말과 같다. 독특한 리듬과 연음, 발음의 생략, 흔히 말끝을 말아 올리는 듯한 어투는 외국인이 듣기에도 특이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투에서도 때로 남부 억양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힐러리는 이를 너무 의식적으로, 청중에 아부하듯 '연출'한다고 해서 입방아 거리다. 힐러리의 본거지는 중부의 중심도시 시카고이지만, 남편 빌이 주지사를 했던 남부 아칸소에서 20년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남부 말은 사투리가 아니다.
■ 그렇다고 힐러리의 사투리가 완전히 흑인 억양 그대로 일 리는 없다. 그가 애써 구사하는 흑인 액센트(accent)는 우리 말로 '흑양'쯤이 될 'black-cent'라고 조소를 당한다고 한다. 정작 힐러리의 경쟁자인 배럭 오바마는 흑인인데도 꼬박꼬박 표준말을 쓰는 바람에 더 희화적이다.
역시 정치인은 표를 보면 물불을 안 가리는 모양이다. 정치에서는 말의 사투리만 있는 게 아니다. 광주에서, 대구에서, 대전에서 때 마다 들리는 아부와 찬양들은 정치적 사투리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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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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