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중동 5개국을 방문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일 카타르에서 또 한마디를 했다. 동행한 일본기자들에게 "결코 미국에 사죄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사죄'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분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미국에서) 잘못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솔직한 기분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미국측이 자신의 해명을 이해한 것으로 본다고 자찬했다.
아베 총리는 2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인간으로서, 총리로서 마음으로부터 동정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로 직전 미국 의회 지도자들에게도 일본군 위안부들이 "아주 고통스런 상황에 강제적으로 처하게 됐던 것을 매우 미안하게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예정에도 없이 불쑥 꺼낸 '불충분한 사죄'였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부인'을 한 것은 "위안부에 대한 사죄를 왜 당사자가 아닌 미국에 하느냐"는 국내외의 비판 때문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비판이 집중될 것으로 걱정했던 '사지' 미국을 떠나자마자 일본 국내 여론을 향한 화법으로 '모드'를 전환한 것이다.
믿었던 미국의 언론으로부터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정치가로 낙인이 찍혔던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편적 정서와는 동떨어진 섬나라식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일본 지도자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그런 지도자가 이끄는 일본이 유엔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졸지에 곤란해진 것은 부시 대통령이다. 아베 총리가 사죄도 안했는데 "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세계에 선언한 셈이 됐다. 쓴 웃음이 절로 나오는 한편의 코미디가 됐다.
도쿄 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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