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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에베레스트/ 제5信 - 세번째 공격캠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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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에베레스트/ 제5信 - 세번째 공격캠프 구축

입력
2007.05.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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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에서 귀환한 이성원기자가 위성전화를 통해 원정대 움직임을 취재한 기사를 마지막으로 에베레스트 특집기획을 마칩니다. 원정대의 등정 소식은 이후 다른 지면을 통해 계속 보도됩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최초의 코리안 루트 개설에 나선 원정대의 행군에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주]

정상으로 가는 길, 하늘이 쉽게 문을 열지 않는다.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가 험난한 장애물과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초 지난달 21~23일께 세번째 공격캠프(C3ㆍ해발 7,000m)를 구축해 정상을 향한 루트 공략에 나서려 했던 원정대의 계획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눈보라를 몰고 온 기상악화 탓이다.

수 차례 베이스캠프와 C1(해발 6,000m), C2(해발 6,400m)를 왕복했던 대원들은 이제 고소 적응력이 높아져 점차 걸음에 속도가 붙고있다. C2에 전진베이스캠프(ABC)를 차린 후 박영석(44) 대장과 오희준(37) 부대장은 후배들 보란 듯 앞장 서서 루트 공략에 나섰다.

21일 박 대장과 오 부대장이 설치한 로프는 300m. 이튿날 이번에는 원정대 막내 격인 이형모(29), 정찬일(27) 대원이 바통을 이어 C3 설치 지점의 턱밑인 6,900m까지 로프의 길이를 250m 더 늘려놓았다.

하지만 다음날 ABC에 있던 원정대는 루트 공략을 멈추고, 짐을 싸서는 베이스캠프로 철수해야만 했다. 기상악화가 가장 큰 이유였다. 보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ABC의 식량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원들은 흐린 날씨 덕(?)에 긴 휴식에 들어갔다. 박 대장은 좀체 날이 갤 것 같지 않자 전 대원에게 베이스캠프 바로 아래 마을인 고락셉(5,160m)에서 쉴 수 있도록 2박3일의 휴가를 주었다. 대원들은 모처럼의 나들이로 지쳤던 몸과 마음에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대원들이 꿀맛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 않았다. 궂은 날씨는 여전했고 다른 원정대 소속 셰르파가 낙빙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셰르파들의 동요가 시작됐다. 이번 등정은 여러 번 길이 난 일반 루트가 아닌, 수직의 벽에 새 길을 여는 위험한 도전이라 셰르파의 걱정은 더욱 컸던 차.

무작정 도망가겠다는 셰르파들을 박 대장이 나서서 가까스로 안정시켰다. 박 대장은 “루트 작업은 우리가 앞장서서 다 할 테니 당신들은 밑에서 짐만 올려주면 된다”고 설득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개척은 셰르파가 보기에도 무모하리 만큼 위험한 도전이기에, 정상으로 가는 길에 헤쳐가야 할 장애물은 더욱 험난하다.

미친 듯 불어대던 눈보라가 멈추면서 28일 베이스캠프에서 C1으로의 물자수송이 다시 시작됐다. 1일 새벽부터는 정상으로 가는 새 길을 뚫는 루트 작업이 재개됐고 등정을 위한 힘찬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이제 마의 7,000m를 넘어 본격적인 정상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정상까지 남은 높이는 1,948m.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다.

■ 미스코리아 박희정·김수현 응원 마치고 귀국

네팔에서 귀국한지 10여 일이 지났지만 그들의 머리 속은 아직도 히말라야 설산이 꽉 채우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 홍보대사’로 직접 베이스캠프까지 가서 박영석 원정대를 응원하고 온 2006년 미스코리아 박희정, 김수현씨. 목숨을 담보해야 오를 수 있는 히말라야는 두 사람에게 삶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기회를 주었다.

박희정씨는 “주위에서 제가 히말라야의 정기를 듬뿍 받아 왔는지 곁에 있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고 했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세상이 완전히 달라보이고 매사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때문인 것 같다고. 김수현씨는 “ ‘힘들었냐고 물으려다 제 표정이 너무 밝아서 좋았었냐고 묻게 되더라’는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여성들에게 에베레스트의 품으로 들어가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침낭 속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고, 잘 씻을 수도 없는 불편한 여행길이다. 자칫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고소증’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그 고된 산행 길은 또한 네팔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김씨는 “트레킹 내내 그들의 빈곤한 생활을 접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의 여유로움을 생각했고, 반면 우리의 풍요에 끼어있는 결핍을 생각했다. 그렇게 가난하지만 표정과 행동에 깃든 넉넉함을 엿보면서 과연 이렇게 풍족하게 사는 내가 그들만큼 행복한가 스스로 묻게 되더라”고 했다.

그는 또 어렵게 이른 베이스캠프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침내 다 왔다는 생각에 이제 홀가분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목적지인 그곳이 박영석 원정대에게는 시작점이었다. 먼저 가기가 미안해서 돌아서 내려올 때는 원정대의 텐트가 계속 눈에 밟혔다”고 말했다.

건강한 남자도 오르기 어려운 길을 두 사람은 별다른 차질 없이 소화해 원정대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씨는 “예상 밖으로 우리가 하도 건강하게 오르니 박 대장님이 ‘취업 걱정 말아라. 전문 등산인으로 키워주겠다’고 추켜세우더라”며 “이번 등정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원정대 귀국일 꼭 마중 나가 대원들을 환영하고 싶다”고 했다.

이성원기자

■ 남선우의 에베레스트를 말한다/ 무산소 등정 '불가능은 없다'

산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지대에서 인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히말라야에서 8,000m 등반이 시작되면서 본격 제기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인위적인 산소 공급 없이 도달한 최고도는 1909년 파키스탄의 초골리사(7,654m)봉에서 얻은 7,498m였다.

당시 의학자들은 이것을 한계점으로 여겼다. 그래서 공기 중 산소분압이 평지의 30% 수준인 해발 8,000m 위로는 인간이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신체에 산소공급이 현저히 떨어지면 실명이나 집중력 저하, 뇌수종 같은 급성 고산병에 걸려 절대적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산악인들은 그런 히말라야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 표고 600~700m 전진할 때마다 캠프를 설치하고 일정기간 체류해야만 했다. 8,000m 위에서 사용할 압축산소통이 개발되었으나 한 통에 12kg이나 되는 이것을 고지대에서 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럼에도 8,000m를 넘어서려는 산악인들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그 목표는 세계 최정점 에베레스트(8,848m)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드디어 영국이 1921년 첫 원정대를 파견하게 되었고, 1924년 제3차 원정대의 노턴이란 사람이 산소공급 없이 8,580m까지 도달해 등정 가능성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동안 개발된 군용 장비들이 히말라야 등반에 활용되었다. 특히 가볍고 용량이 향상된 알미늄 합금 산소통이 개발되면서 8,000m 저산소 지대를 안전하게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 산소통을 지고 영국은 1953년 5월 마침내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데 성공한다.

이때까지 인공 산소에 의존하지 않고 오른 최고도는 1952년 스위스원정대가 세운 8,595m.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인공 산소 없이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하며, 만약 올라선다고 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1978년 5월 라인홀트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에 의해 깨져 버렸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호흡만으로 저산소 ‘죽음의 지대’를 통과하여 에베레스트 꼭지점에 올라섬으로써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최고봉을 무산소로 오른 산악인은 전세계에서 152명이나 된다. 전체 에베레스트 등정자 3,026명의 약 5%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남서벽 신루트를 등반하고 있는 박영석이 1993년 세운 기록이 유일하다.

같은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도 인공산소를 사용했냐 아니냐에 따라 그들이 경험한 모험의 세계는 아주 다르다. 또한 같은 히말라야 정상 등정이라도 어느 루트로, 어떤 방법으로 올랐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내려진다.

오늘날 에베레스트에는 상업등반대를 따라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유일무이한 지구의 정상에 오르려고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들 중에서 인공산소나 셰르파에 의존하지 않고 어려운 루트로 오르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등반의 본질은 ‘불확실성과 맞서서 얻는 깨달음’이란 메스너의 교훈은 아직 유효하다.

남선우(월간 마운틴 발행인, 88년 에베레스트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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