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다 다니는 속셈학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공부가 재미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태권도장을 다녔다. 태권도장에서 발차기를 하다 보니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운동 본능’을 느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농구부. “농구가 너무나 재미 있어요. 농구 하게 해주세요.”
한국프로농구(KBL) 사상 최초로 최우수선수(MVP) 3연패의 위업을 이룬 울산 모비스 양동근(26)은 이렇게 해서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양동근은 ‘농구 명문’ 서울 대방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2년 농구를 시작했다.
지난 1일 밤 울산 시내 한 음식점에선 모비스 농구단의 우승 피로연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지난해 정규시즌과 올 정규시즌에 이어 플레이오프 MVP에 오른 양동근과 그의 예비신부 김정미(26ㆍ운동처방사)씨를 만났다.
양동근은 내내 김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손 좀 놓고 얘기해라”는 동료들의 핀잔에도 양동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띠 동갑이자 최고참인 이창수(38)는 “(양)동근이는 원래 그래요. 녀석이 넉살이 좋잖아요.”
친구에서 부부로
양동근과 김정미씨는 한양대학교 체육과 ‘00학번’ 동기생이다. 둘의 첫 만남은 그 해 3월 과(科)MT 때.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김씨의 선한 인상에 양동근이 반했다. 몇 달 동안 친구로 지내던 양동근은 10월 용기를 냈다. “너 나랑 사귀지 않을래?”
연인으로 지내던 둘의 관계가 ‘예비부부’로 발전하게 된 것은 ‘빼빼로 데이’였던 지난해 11월11일. 당시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양동근은 태릉선수촌에서 합숙생활을 했다.
선수단 휴식일을 맞아 양동근은 이벤트를 꾸몄다. 강원 횡성 성우리조트 내 한 펜션을 빌려 청혼을 하기로 한 것. 양동근은 팀 내에서 ‘피아니스트’로 통하는 김효범(24)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동근은 두 달 동안 피눈물 나게 피아노를 연습했다. 물론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던 만큼 ‘독수리 타법’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양동근이 불철주야 연마한 곡은 고(故)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와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 . 양동근의 정성에 감동한 김씨는 울먹이며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대와> 사랑하기>
우승 반지를 그대에게
양동근은 김씨에게 청혼을 하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올해는 무슨 일 있어도 통합 챔피언 먹고 반지 줄게.” 양동근은 약속을 지켰다. 정확히 말하면 약속을 ‘200%’ 이행했다. 통합 우승은 물론이고 정규시즌 MVP에 플레이오프 MVP까지 휩쓸었다.
양동근과 김정미씨는 오는 6일 오후 1시 서울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양동근은 “(자식을) 힘 닿는 대로 낳자”고 하지만 김씨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80년대 표어’로 맞서고 있다. 왜 하필 5월6일일까. 양동근이 밝힌 이유는 간단하다. “챔프전 끝나고 군입대(5월14일) 전에 결혼하려고요.”
코리아 넘버 1 양동근
‘농구선수’ 양동근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양동근은 기량, 정신자세, 생활태도 등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선수다. 어느 감독, 어느 팀을 만나더라도 제 몫을 다할 것이다.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양동근의 생각은 다르다. “유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농구에는 50%도 못 미쳐요. 상무에서 뛰게 될 2년 동안 더 노력할 겁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습니다.”
울산=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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