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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도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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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도 한국인'

입력
2007.05.0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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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국인이 아닌 무국적자입니까?" 법무부에서 귀화업무를 담당하던 공무원은 화가 난 민원인의 질문을 받고 할 말이 없었다.

현행 국내법은 우리 국적 부여자를 '국민이었던 자'나 '국민인 자'에 한정하고 있다. 기본은 일제 때인 1912년 발효된 조선민사령이고, 그 때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법적으로 조선 국적자에서 제외됐다.

1910년 중국 칭따오(靑島)로 망명했던 단재 선생은 당연히 국적을 취득할 수 없었다. 민사령은 정부수립 후 제헌헌법 규정(100조)에 의해 효력을 지속하다 폐지됐으나 골격은 유지되고 있다.

■ 그 공무원은 "현행법 상 어쩔 수 없다"고 얼버무렸지만 당혹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이 규정했던 우리의 국적문제가 해방 후에도 완전한 체계를 못 잡고 누더기식으로 정리되다 보니 허점 투성이다. '자랑스런 조선인' 가운데 무국적자로 남아 있는 경우가 어찌 단재 선생 뿐이겠는가.

당시 중국과 러시아로 건너간 한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그 2세, 3세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안과 명분은 다르지만 우리의 국적법은 이제 거꾸로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코시안들에게 심각한 애로가 됐다. 다문화ㆍ다인종사회를 위해 신경 써야 할 대목 중 하나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 노수환씨가 2005년 법무부 국적난민과에 파견됐을 때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인이 되려는 외국인을 위한 안내서 <나도 한국인> 을 출판했다. 농촌 총각의 40% 이상이 외국인 신부를 맞는 요즈음 그는 고향에 내려갈 때면 그들을 위한 사랑방 상담소를 열었다.

그러다 27명이 사망한 여수 외국인보호소 방화사건을 접했고, 신림동 화재현장에서 11명의 생명을 구한 몽골인이 무국적 사실이 두려워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적자는 국적의 축복을 알 수 없다. 그는 '무국적'의 설움을 누구보다 많이 지켜본 국적자이다.

■ 노씨는 외국인들이 쉽게 보도록 만화로 썼다. 공주대 만화학부 백준기 교수가 생면부지인 노씨의 부탁을 받고 제자들과 함께 200여쪽의 만화를 무료로 그려 준 것이 고맙다. 그들은 국회의원 20명 이상인 어느 교섭단체보다 나은 입법홍보 활약을 했다. 출판비용을 사비로 충당하기 벅차 정부에 예산 사용을 타진했다 퇴짜도 맞았다.

3월에 출판돼 국내 외국공관들로부터 인기가 높자 정부는 노씨에게 법의 날(4월 25일) 대통령표창을 줬다. 하지만 책값이 좀 비싸다(1만3,500원). 출판사 사정 상 그렇다니 이제라도 정부가 조금만 보조하면 안될까.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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