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연의 이라크로 간 세 아이의 엄마평화의 눈으로 '참여적 학술논문' 분만하다기록·고발 통해 민간인 희생자 기록의 허위 규명해이라크 이후에도 아체·민다나오·레바논 등 '평화 여행'"종교적 이타주의자보다 근원적 에고이스트에 가깝지요"
형식을 파괴한 석사논문
1년8개월전 이라크에 관한 독특하고 유일한 석사학위논문 하나가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을 통과했다. 논문 제출자는 NGO학과 임영신.
미국의 이라크 점령 뒤 이라크인 피살자 및 희생자 기록의 진위를 추적한 이 논문은 제목이 '기록의 전쟁, 평화의 증언_2003년 3월부터 2005년 6월까지'이다.
임영신은 논문의 연구주제를 설정하면서 고민했다. 처음에는'점령 하 이라크는 누구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졌으나 이 물음으로는 도저히 안개를 헤치고 나갈 수 없었다.
마침내 임영신이 "도대체 왜 우리는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의 기록을 구할 수 없는가?"로 연구 시각을 백팔십도 돌리자 안개는 걷히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현장자료를 제시하고 논의를 거쳐 내린 임영신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죽인 자(미국)는 죽은 자(이라크 희생자)를 세지 않는다."
평화운동가의 저널리즘 전략
이 논문은 미국이 강점한 이라크 내면을 통찰하고 희생자 기록의 허위를 규명하려고 시도한 국내 최초의 논문이다. 연구 방법론에서 '기록과 고발을 통해 앙가주망(현실참여)을 이끌어내는 '평화 저널리즘'을 차용해 논문 형식을 깬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전야 평화운동가인 그녀가 한국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현지에 들어가서 활동하며, 전쟁의 상황, 점령의 현황을 인터넷 매체로 전해온 일은 모두가 기억한다.
종전 후에 조사팀으로 다시 이라크를 드나들며 '미군 점령의 그늘'을 줄기차게 조사하기 3년, 그녀는 현지에서 수행한 사례조사 면접조사 현장조사의 자료를 동원해 자기 논지의 토대로 삼는다.
임영신이 이라크 평화 길잡이 수아드 아메드의 협조로 바그다드대학 국제연구소와 함께 실시한'미군 점령과 한국군 파병에 관한 여론조사, 국제반전평화운동인 '바그다드 국제점령감시센터'의 활동상황, 반전평화 국제 연결망이 이스탄불에서 개정한 '이라크 국제법정'의 최종평결문(앵글로 아메리칸의 유죄) 등은 실증적으로 유용한 자료가 됐다.
논문을 지도한 '대한민국사'의 저자 한홍구 교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3년간 현장을 추적해서 작성한 이 논문을 인정했다.
임영신은 평화의 눈으로 미군 점령의 부당성과 저항의 정당성, 진실의 통제와 기록의 은폐를 파헤친 참여적 학술논문을 분만한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는 여성
노르웨이의 세계평화네트워크 소장 요한 갈퉁은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의 개념으로 평화운동의 근거를 제시했다. 갈퉁은 지배세력의 폭력은 구조적이고 체계적이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피지배층의 폭력은 국지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눈에 띄고 체제 속의 반역으로 간주된다고 본다.
이와 관련 평화저널리즘은 자아와 타자를 예리하게 가르는 경계선을 허물어 자아 속에 타자를 포용하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저널리즘이다. 평화옹호자인 임영신이 평화저널리즘의 수단으로 이라크 문제에 접근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임영신은 강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여성이다. 그녀는 몽상에 빠져 눈물짓는 여성이 아니고 사실이 주는 아픔으로 우는 평화 유목민이다.
서른여덟 살.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출신으로 녹색연합, 총선연대, 아름다운 재단의 시민운동가로 활동한 그녀가 평화운동가로 진로를 바꾼 것에서 특별한 동기를 찾을 필요는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평화옹호자의 물길을 탄 것으로 보면 된다.
이라크 이후 그녀는 평화여행가의 행보를 하고 있다. '쇠귀' 신영복(성공회대 교수)은 임영신의 첫 저서 〈평화는 나의 여행〉서문에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하고 붓글씨로 썼다.
그녀는 인도네시아 쓰나미의 땅 아체, 필리핀의 종교 분쟁지 민다나오, 종교 전쟁의 땅 레바논, 히말라야 트레킹의 나라 네팔 등을 여행하며 평화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동시에 평화도서관보급운동을 추진해 이 달 이라크 평화도서관이 문을 연다.
세 아이 수중 분만한 箏?/b>
그녀에게 깃든 평화의 뿌리는 남편 이도영 목사와 세 아이와 함께 사는 가정에 있다. 그녀가 새로 준비하고 있는 책의 주제도 '길 위의 집'이다. "한 집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방향을 향해 한 길 위에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세 아이를 모두 수중 분만한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의 일상이 가장 가까이서 서로 교통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과정 속에 투영된 것이지요."
임영신은 병원과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삶,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되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삶, 적게 가지고 소박하게 사는 삶, 그러나 사람과 자연의 큰 그물망 속에서 풍요를 느끼고 누리는 삶, 이런 것들에 대한 꿈을 일구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남편이 한없는 자유의 폭을 줄 뿐 아니라 삶에 주어진 소명과 사명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를 늘 깊은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남편의 메시지는 요르단에서 받은 것이었다. 폭격 당하고 있는 이라크에 다시 들어가려고 망설이며 남편에게 물었다. 그때 남편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당신이 이라크에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고민은 지금이 들어가야 할 시기인가 아닌가에 대한 운동가로서의 판단이어야 합니다. 나에게 누가 될지 안 될지에 대한 염려가 우선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는 삶, 그것에 충실한 결정을 하십시오."
근원적 에고이스트
그녀는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하고 있으나 제 속에 투쟁하는 분노와 욕망, 열정을 구분하는 일이 아직은 그리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다만 곧 사십을 앞둔, 또 어느새 아이들의 어미가 된 삶 속에서 제가 품고 사는 어떤 말들, 가치들을 향해 제 삶을 밀어가는 내면 혹은 외면의 밀도가 말만큼 충일한 가를 깨어 바라보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물었다. "귀하의 치열한 에너지는 종교적 이타주의에서 발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동의하시나요?"
"종교적 이타주의라는 명명은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다는 것, 죽고 싶은 일을 위해 살수 있다는 것, 그 길 위에 놓인 무수한 만남으로 저 스스로의 좁은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얕은 정신의 깊이를 기경(起耕)해 가는 기쁨이 참 크고 넉넉하니 그 것을 이타주의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근원적 에고이스트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이 말을 할 때 그녀는 고요한 호수가 된다.
■ '기분좋은 QX'가 제공하는 트렌드 ABC
● 광(미칠 狂)형 자기성장
한 때 사회는 한 가지를 잘하는 전문성을 요청했다. 그런데 새로운 추세로 전문가 중에 권위 있는 시험제도, 국가공인 자격증, 박사학위, 다국적 대기업 경력, 사관학교 졸업 등을 통해 인정받는 전문성을 비켜가거나 넘어가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전통적인 공인제도를 거쳐 프로페셔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개척해 거친 길을 걸어서 전문가가 되는 경우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존 경쟁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져 새 길을 택한다.
또 처음부터 사회제도가 정해놓은 프로페셔널 영역이 아닌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비주류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보통 십 수 년이 걸려 전례 없는 신지식을 만들어낸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세상에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틈새 영역을 메우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자기가 열망하고 원하는 일에 기꺼이 몰두하며 자기를 성장시키는 광형(마니아 형) 인간이다.
홈페이지 www.givenzoneqx.com
사진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ann-bc@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