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가 끓는 돼지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물에 씻어 먹는다. 조센징이라고 놀린 일본 고등학생들이 탄 버스를 힘을 합해 밀어 넘겨 버린다. 말끝마다 돈을 벌어야겠다면서, 돈을 벌면 통일사업에 쓰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피와 뼈> <박치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등 최근 국내 개봉한 일본영화에서 그려진 재일동포의 자화상이다. 대부분 한과 정과 의리와 오기로 똘똘 뭉친 이들이 민단이든, 조총련이든 삶에 대한 결기와 조센징에 대한 차별에 적극 대항하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달은> 박치기> 피와>
여기에 가해자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는 1세대의 한숨과 약동하는 젊음으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2세대의 분기탱천하는 에너지가 충돌에 충돌을 거듭한다. 극단적 가부장의 모습과 악착같이 현실을 버텨내고 생활을 책임지는 어머니 모습도 영화마다 빠지지 않는다. 이들의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생에 대한 본능이 빚어내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보자면, 온갖 편견과 차별을 뚫고 이국 땅에서 뿌리내리려는 재일동포의 역사가 저절로 다가온다.
재일동포 감독 최양일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에서 이런 한국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희화화 하여,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대략 15년 전 영화인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어떤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한국이름이 강충남인 택시기사 타다오(기시타니 고로)의 어머니는 도쿄에서 술집을 경영하는데, 필리핀이나 동남아시아의 아가씨들을 데려다 어떻게든 매상을 올리려고 안간힘이다. 본인이 조센징이라 차별을 당했을 터인데도 “동남아시아 여자는 믿을 수가 없다”며 “필리핀, 타이, 말레이시아, 타이완 특히 중국인을 가장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조선은 동남아시아가 아니냐?”는 필리핀 종업원 코니의 말에는 “조선은 그냥 동아시아”라면서 슬그머니 발뺌 해 버린다. 달은> 달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는 허허실실한 웃음으로 포장한 도쿄판 <택시 드라이버> 의 개그 버전이라 할만하다. 종업원들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부탁하다가도 막상 자신의 아들이 코니와 동거를 하자 이들을 떼어 놓으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공적인 관계를 가족관계로 치환하는 한국인들의 습성이나, 필리핀도 제주도 아가씨도 안 되고 남한 아가씨는 더더욱 안되며 오직 북한 아가씨하고만 결혼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일본 땅에서든, 한국 땅에서든 변치 않는 우리민족의 어떤 심리적 밑바닥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택시> 달은>
그래서 감독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라고 물어 본다. 강충남이 근무하는 택시회사의 한 운전기사가 길을 잃자 회사 간부는 전화기에다 대고, “무조건 달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지시한다. 한국에도 일본에도 미국에도 떠 있는 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보다 달 그 자체를 봐야 하지만, 그러나 달이 태양이 될 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감독은 ‘달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말한다.
<피와 뼈> 나 <수> 의 하드보일드 액션의 비정함과 잔혹한 기운을 입기 전, 최양일 감독은 일본의 모든 근본 없는 고단한 민초들을 너른 웃음으로 감싸 안는다. 모든 이름없는 고단한 것들의 목숨으로, 달은 오늘도 환하게 세상을 비춘다. 수> 피와>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심영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