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1일 긴 하루를 보냈다. 외부 노출을 삼가고 하루 종일 고민을 거듭했다. 스스로 “깊은 고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자신과 이재오 최고위원의 결정에 따라 한나라당의 진로가 극단적으로 달라질 것임을 엄중히 받아들인 까닭이다. 고심의 끝은 당 쇄신안 조건부 수용을 통한 내분 봉합으로 가닥을 잡는쪽이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오전 8시 10분께 서울시청 부근의 한 호텔에서 이 최고위원과 조찬 회동을 했다. 회동은 2시간 가량 이어졌다. 오전 9시 노동절 마라톤 대회 참석도 행사 직전 취소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최고위원은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 전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이 최고위원의 사퇴를 만류했다. 이 전 시장의 비서실장인 주호영 의원은“당 개혁은 하되 현 체제에서의 개혁이 바람직하다는 이 전 시장의 기존 입장에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시장은 오후 4시께 이 최고위원을 다시 만나 2시간여 동안 재차 설득했다.
이 전 시장과 이 최고위원의 2차 회동 뒤 주 의원은 “모든 입장을 고려해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깊은 고심 중에 있다”는 이 전 시장의 언급을 전했다. “한나라당이 12월 본선에서 최종 승리하는 방안을 찾는데 고민의 모든 것을 주력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원만한 처리’라는 언급은 내분 봉합 쪽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캠프 관계자도 “예단하긴 어렵지만 당 수습 쪽이 좀 더 우세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캠프 주변엔 강재섭 대표의 쇄신안을 조건부로 수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확산됐다. 2일 기자회견에서 공정한 경선관리와 강력한 부정ㆍ부패 방지책 등 추가 쇄신안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이 이런 쪽으로 스탠스를 잡았다면 현실론적 이유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쇄신안을 거부하고 이 최고위원이 사퇴하는 카드를 쓸 경우엔 당은 분란을 넘어 쪼개지는 국면으로까지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이 전 시장측이 당을 깼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부담을 다 질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 주도권을 잡더라도 혼란을 치르는 방식보다는 화합의 모양새를 취하면서 이뤄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인식인 셈이다.
캠프 내 온건론도 이런 시각에 바탕하고 있다.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이방호 정종복 의원 등 영남권 의원들은 이 같은 측면을 강조하며 이 최고위원의 사퇴를 만류했다. 온건파 의원들 사이에선 “지지율 1위 후보가 현재의 판을 굳이 흔들 필요가 뭐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반면 강경파는 차제에 당 운영의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두언 진수희 차명진 의원 등 수도권 소장파들의 생각이 그렇다. 이들은 현 지도부가 다 물러난 뒤 박근혜 전 대표측과 당권을 놓고 정면 승부를 해야 하며, 승산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모습이 대선 승리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이 전 시장은 이처럼 팽팽한 양 갈래 의견과 논리를 종합해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때문에 이 전 시장은 이날 밤 늦게까지 초ㆍ재선 중심의 소장파, 당 중진ㆍ원로 의원들 및 당 밖의 사회 원로들에게까지 두루 의견을 구했다. 이 최고위원도 잠행하며 장고(長考)했다. 측근 의원들도 “방향을 나도 모르겠다. 연락을 받은 게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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