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 연인이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 10년 전 연인과 함께 듣던 음악은 0.1초도 지체하지 않고 ‘타임머신’처럼 달콤했던 순간을 눈 앞에 펼쳐놓는다. 음악이 개인의 추억과 버무려져 제각기 새로운 버전으로 탄생한다면, 그 중 작곡가 이영훈(48)의 노래들이 가장 많을지도 모른다.
이영훈은 스물 다섯 살이던 1985년 이문세 3집으로 데뷔해 <난 아직 모르잖아요> <광화문연가> <이별이야기> <옛사랑> 등 숱한 히트곡을 작사 작곡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자비와 서울음반의 도움으로 무려 10억원을 투입 <옛사랑1> 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옛사랑2> 를 선보였다. 김건모 윤종신 임재범 버블시스터즈 성시경 리쌍 윤건 등 후배 가수들은 물론에 정훈희 전인권 등 중견가수들까지 그의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옛사랑2> 옛사랑1> 옛사랑> 이별이야기> 광화문연가> 난>
이영훈은 <옛사랑2> 의 에필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랑과 음악의 공통점 하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더욱 더 그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라고. 이문세의 목소리를 빌렸던 이영훈의 음악과 노랫말들은 대체 어떤 사연이었을까.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깊은 눈매의 그는 “흔히 겪듯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했고, 잘 안 되었죠”라며 ‘일반적인 사건’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1,000만명 이상의 팬들이 기억하듯 구구절절 그의 가사에는 그만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옛사랑2>
이문세 3집은 한국 가요사상 처음 100만장을 넘었다. 마운드에 서자마자 홈런을 친 셈이다. 당연히 어깨에 힘깨나 주고 다녔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데뷔해서 10년까지 스스로 작곡가라고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20년 되는 오늘날에야 비로소 스스로 ‘작곡가 이영훈’이라고 쓴다. “그래도 욕을 안 먹는 걸 보니, 인정해주는 눈치네요.”
<난 아직 모르잖아요> 는 사실 대중을 겨냥한 곡이었다. 이영훈은 <소녀> <휘파람> 이 다소 어렵다고 판단해 앨범의 막바지에 이 노래를 급히 만들어 넣었다. 그의 표현을 빌면 ‘장르 안에서는 정확한 슬로우록’이지만 대중적이다. 이영훈은 데뷔하기 전까지는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주제가를 작곡하거나 피아노 세션으로 활동했다. MC로 유명한데다 <파랑새> 로 다소 코믹한 이미지가 있는 이문세를 분위기 있는 발라드가수로 확 바꿔야 겠다는 마음으로 3집 앨범을 만들었다. 파랑새> 휘파람> 소녀> 난>
이영훈은 이후 2001년 13집까지 오직 이문세에게만 곡을 줬다. 매년 한 두 장씩 앨범을 냈고, 이문세 7집과 12, 13집은 직접 제작까지 했다. 그리고는 호주 시드니에 둥지를 틀고 5년간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20년을 결산하는 프로듀서 앨범 <옛사랑> 을 준비하며 그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돌아봤다. 스스로 꼽는 음악세계의 중심은 <광화문 연가> 와 <옛사랑> . “특히 <옛사랑> (1991년 이문세 7집)의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라는 가사가 처음에는 의미 없는 말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옛사랑> 옛사랑> 광화문> 옛사랑>
이영훈은 이후 스스로 제대로 쓴 가사는 12집의 <기억이란 사랑보다> 라고 꼽았다. “이제 무미건조한 말로 ‘사기’도 칠 줄 아는구나 싶었어요. 시인처럼요. 작곡가는 오래된 화가 무용가 시인 같은 존재라고 봐요. 시인이라면 시골학교의 국어교사를 하면서도 시를 쓰죠. 그런데 사랑에 대한 정열도, 그리움도 없어졌으니 이제는 뭘 쓰죠. 요즘은 갈무리를 해 두느라 피아노 치다 멜로디가 떠올라도 기록을 안 해요.” 기억이란>
이영훈은 내년 여름 자신의 히트곡으로 구성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 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김민기 선배가 <지하철 1호선> 을 계속 운행하고 있듯, 저 역시 창작 뮤지컬계의 한 구석에서 <광화문 연가> 를 계속 손질하며 사는 게 꿈이에요.” 광화문> 지하철> 광화문>
이재원 기자 jj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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