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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간적인' 재벌 총수의 특권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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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간적인' 재벌 총수의 특권 의식

입력
2007.04.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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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재벌총수가 수사기관에 불려가 고된 조사를 받았다. 애지중지하는 둘째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직접 폭력으로 응징한 하룻밤의 활극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다시 사법처리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회삿돈을 함부로 빼내 쓰고 불법정치자금이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처벌 받은 경우가 대부분인 재벌 총수들의 수난사에서 그의 폭행 혐의는 일종의 일탈이다.

재계 9위의 기업군을 거느린 회장이 왜 뒷골목 폭력 세계를 다룬 느와르 필름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화그룹은 김 회장이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하기 직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그 해답의 단서를 열었다.

'김승연 회장의 인간적 면모'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자료는 김 회장이 29세에 부친을 잃고 대기업을 이어받은 후 보여준 미담과 선행의 에피소드를 망라하고 있다.

IMF 외환 위기 당시 계열사를 팔면서 20억~30억원을 손해 보더라도 종업원의 고용승계를 최우선시하라고 지시했다는 후일담은 다분히 인간적인 경영인 상을 전해주고 있다. 모친의 팔순 때 축하 편지를 직접 작성해 영상 편지로 제작했다는 일화에서는 지극한 효심을 엿보게 한다.

그뿐이랴. 부인과 해외로 자녀를 보낸 그룹 내'기러기 아빠'들이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특별휴가와 항공기를 지원했다는 대목에선 뭉클한 감동을 자아낼 법하다.

여기에 이르러 보도자료는 "김 회장 자신이 아들 셋을 모두 유학 보냈는데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워 늘 힘들어 했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보탰다. 이어 김 회장의 부정(父情)은 이 시대 사라진 아버지 사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화라고 결론지었다.

이쯤 되면 보도자료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이른바 북창동 보복폭행 사건은 너무나 '인간적인' 김 회장이 자식 사랑을 못 이겨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니 너그럽게 봐달라는 메시지일 게다.

김 회장의 심리적 충동성을 강조해서라도 보복 폭행에 이르게 된 배경을 납득시키려는 김 회장측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둘째 아들을 때려 10바늘이나 꿰매게 한 또 다른 가해자들은 무조건 사회적 약자 취급하면서 재벌 회장의 행동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자의 폭거로 여기고 있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선량한 시민을 때렸는가"는 한화측의 항변을 그저 흘려버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게 있다. 자식 사랑이 애절하다고 해서 모든 아버지가 폭행을 폭행으로 보복하려 들지는 않는다. 마음이 백번 앞서더라도 개별적인 보복 행위는 법 절차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규약에 어긋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기업 회장의 위세를 동원해 아들에게 보복의 기회를 준 김 회장의 행동을 '유별난 부정'탓으로 넘길 아량의 여지는 크지 않다. 오히려 법을 어겨서라도 복수의 법칙을 가르친 재벌 총수의 자식 사랑에서 국민들은 비틀린 특권의식을 가늠하고 있다.

사회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재벌들은 개인적 탈법과 법을 거스른 경영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횡령금을 토해내고 사회 공헌을 명분으로 개인재산을 출연하는 일도 이젠 낯설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 준법 경영이 곧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 윤리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룰을 지키지 않은 경영의 기회비용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복 폭행으로 "이 시대의 아버지 사랑을 다시 일으키려 한" 김 회장의 어긋난 부정이 글로벌 도약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한 한화호의 항진에 최소한의 역풍으로 그치길 바랄 뿐이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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