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과 호프집 종업원, 막노동, 단란주점 웨이터, 무역업체 인부, 음식점 배달원, 중소 제조업체 현장 조장…’ 30대 후반의 중년 직장인의 경력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론 28세의 한 대기업 신입사원의 이력이다.
주인공은 종합 해운상사인 STX팬오션의 서영산씨. 그는 현재 입사 2년차에 대리급이 하는 업무를 맡아 하는 잘 나가는 사원이다. 하지만 그의 취업 성공 뒤안길에는 숱한 역경이 숨어있다.
지방대 문과 출신의 보잘 것 없는 취업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불우한 환경이 강요한 삶의 편린들이 버팀목이 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주경야독의 대학생활
서 씨는 1998년 부산대 독문과에 입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3년 간 암으로 투병 중인데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과외 2~3개는 기본이었고, PC방과 호프집 아르바이트, 막노동 등 수업시간 이외에 시간에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는 이 때 인생에서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이왕 하는 일이면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시간을 쪼개 댄스와 농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밤늦게까지 혼자 춤 연습을 할 때는 힘들었지만 만족감을 느꼈다.
인생의 전환점은 군 제대 이후 복학 때까지의 공백기간에 취직한 담요 수출업체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외국 바이어들과 협상하면서 계약을 따내는 업체 대표의 모습은 그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또 수출업자, 컨테이너 임대업자, 운송업자로 이어지는 수출 과정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서 씨는 복학 하자마자 무역학 복수전공을 신청했다. 하지만 생계 걱정은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다.
“4학년 때도 점심시간에는 학교 앞 닭갈비 집에서 배달을 했어요. 친구들은 대학의 낭만을 즐길 때 저는 배달 통을 들고 캠퍼스를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학생회 선전부장도 하고, 영어회화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후배들과 토론하고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경험의 저력
졸업이 다가와 해외 경험을 쌓으려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는데 갑자기 STX팬오션 채용 공고가 났다. 아직 한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데다 생계에 밀려 취업준비도 거의 못한 상태라 지원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는 꿈에 그리던 해운회사에 가고자 하는 욕망에 지원서를 썼다. 당시 그에겐 3점대 후반의 학점을 제외하곤 내세울 게 없었다.
서류전형에 합격해 1차 면접을 볼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1분간 자기 소개를 하라는 면접관의 지시에 그는 아무 준비 없이 5분여간 평소 생각했던 철학과 인생관, 경험담을 늘어 놓았다. 서 씨는 “당시 면접관 앞에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는지 저 스스로 놀랐습니다. 갖은 경험을 해본 데서 나온 것이라고 느꼈습니다”고 털어 놓았다.
2차 임원 면접 때도 경험의 힘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고위 임원이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경영진은 노조에 상당히 부정적일 텐데 어떻게 할까’ 하고 순간 고민했다.
노조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건 자살 행위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가스실린더 제조업체에서 일했을 때 노동자를 혹독하게 대했던 사측에게서 느꼈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영어 면접 때도 수험번호가 맨 마지막이어서 면접관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렇게 끝내려고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며 당돌하게 나섰다.
마음 가는 대로 10여분 동안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면접관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결과는 합격. 그는 “그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죠. 화려한 스펙보다 삶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을 회사에서 잘 봐 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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