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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 사회의 놀라운 자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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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 사회의 놀라운 자제력

입력
2007.04.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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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관련한 미국사회의 공식 코멘트는 ‘조승희의 범행은 집단으로서 한국인과 전혀 관계 없다’는 것이다.

찰스 스티거 버지니아공대 총장부터 나섰고, 뉴욕타임스의 논조가 그랬다. 심지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재미 한인과 한국인들의 지나친 죄의식과 일련의 집단적 ‘사과 행위’들은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조승희 범죄는 한국인과 무관”

그러나 어디 그렇겠는가. 예수님을 매도한 역사는 유태인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형성했고, 9ㆍ11테러는 아랍인들에게 극단적이고 위험해 보이는 가면을 덧씌웠다. 마찬가지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선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점심을 배식하는데, 아내의 배식 차례가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인 17일이었다. “글쎄 평소에 별로 대화도 나누지 않았던 백인 엄마가 유난히 생글거리면서 자꾸 말을 붙이는 거예요. 무슨 눈치가 느껴지긴 하는데도, 버지니아공대 사건 얘긴 꺼내지도 않고…. 암튼 난감하기도 하고, 진땀도 나더라구요.”

근처에 사는 한 교포 직장인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맨해튼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한 동료가 싱글거리며 다가와서는 “어이~. 오늘 총 안가지고 왔지?” 하더라는 것이다.

다민족, 다인종사회인 미국에선 이처럼 한 나라 출신이나 유사 인종들을 한 묶음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엄존하며, 이번 사건으로 재미 한인이나 한국인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간 것도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한인 학생들이 사건 직후 버지니아공대 기숙사에서 잇달아 퇴사했을까.

하지만 이번 사건의 전 과정을 통해 가장 놀라운 점은 ‘버지니아공대 사건이 한국인에 대한 집단적 매도로 비화돼선 안 된다’는 공공의 목소리가 자칫 확산될 수도 있었던 대중의 반한ㆍ혐한감정을 거의 완벽하게 제어했다는 점이다.

‘집단으로서 재미 한인이나 한국인은 이번 사건에 책임이 없으며, 재미 한인 역시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일원’이라는 미국 내 공공의 목소리는 혐한감정을 제어했을 뿐 아니라, 한인들을 향한 섣부른 감정의 비약까지도 경계하는 효과를 냈다.

그러다 보니, 사건 후 한인에 대해 실제로 이런저런 느낌을 가졌던 사람들조차 자제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책임 있고 자제력 있는 공공의 목소리가 분열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큰 사회적 재앙을 화해와 단합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분열을 예방한 공공의 목소리

우리나라 역시 사회적으로 고난을 전진의 발판으로 삼고, 재앙을 화합의 계기로 삼았던 예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 내의 공공의 목소리는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친북과 반북’ 등 애써 갈등을 조장하고 편을 가르는 날선 언어로 채워진 게 사실이다.

분명한 진단과 비판의 가치를 폄하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사회의 대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이젠 ‘굳이 까뒤집지 않아도 될 것은 덮어두는’ 지혜를 되찾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철 뉴욕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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