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5 재보선 참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에 갈등이 재연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이 전 시장의 2005년 '군대 동원' 발언 논란을 정면으로 문제 삼으면서 양측 측근들이 대리전을 치르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이 팽배하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측근들에게 "일절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박 전 대표측도 "싸우는 모습을 자제하겠다"고 밝혀 양측 모두 외관상 봉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하는 등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양측 갈등은 재보선 책임 문제와 경선 주도권 싸움, 충청 지역 표심 잡기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풀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박 전 대표의 언론 인터뷰에서 촉발됐다. 박 전 대표는 26일 "공동유세하고 이벤트나 벌이면 대전 시민의 마음이 바뀌었겠느냐"며 "군대를 동원해 행정도시를 막겠다는 분과 유세를 같이 했으면 표가 떨어졌을 것"이라며 이 전 시장을 공격했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도 이 전 시장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행정도시 유치 관련 발언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 부의장이 22일 청주를 방문해 당직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행정도시가 충남 연기군에 생겨봐야 충북과 충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원종 전 충북지사에게 행정도시 유치 운동에 나서지 말고 정부에 다른 것을 요구하라고 조언했다"는 지역 일간지의 발언을 꼬집은 것이다. 박 전 대표측의 최경환 의원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이 공동유세 불발에 있다는 이 전 시장측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표 발언이 나온 것"이라며 "전투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이에 대해 "국민이 한나라당과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직접 언급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의 '대응 금지령' 탓에 측근 의원들은 직설적 언급은 피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듯 했다.
"이 전 시장은 행정도시가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정두언 의원), "화는 나지만 정면 대응할 수도 없고, 왜 자꾸 싸움을 걸어 오는지 모르겠다"(진수희 의원) 등등. 박형준 의원은 "후보가 후보를 직접 비방하고 지역 정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 어떻게 여과 없이 나올 수 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대선주자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비판과 "정말 당이 분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중립적 성향의 남경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 발언을 거론하며 "이 전 시장 때문에 패배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을 보고 처음에 눈을 의심했다"며 "대선주자들이 계속 책임 전가와 이전투구를 벌이면 국민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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