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42)씨를 만났다. 소설가가 아닌 번역가로서 말이다. 그녀가 번역한 독일 소설가 야콥 하인의 장편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영림카디널)가 출간됐다. 이 작가의 데뷔작 <나의 첫번째 티셔츠> 는 배씨의 ‘첫번째 번역작’이기도 하다. 나의> 어쩌면>
동독 출신, 1971년 생, 소아정신과 의사인 하인의 작품을 배씨가 처음 접한 건 독일 체류 중이던 2003년이었다. 동독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데뷔작엔 으레 있을 법한 슬픔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짧고 유쾌하게 전개되는 문장, 연신 웃음을 빼물게 하는 유머만이 반짝였다. 게다가 유명 소설가(크리스토프 하인)인 아버지의 후광까지! “읽는 순간 ‘바로 내 거야!’란 느낌이 들었어요. 이걸 영원히 소유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떠오른 게 번역이었죠.”
하인은 97년부터 베를린의 카페에서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젊은 작가 모임에 속해 있다. 이들의 작품 낭독은 엄숙과 상극이다. 무대 위에서 담배까지 물고 청중을 즐겁게 해주는, 스탠딩 코미디에 가까운 것이란 게 배씨의 설명이다.
카페를 찾은 출판사 관계자의 귀를 번쩍 틔워 책으로 나온 그의 작품 1, 2호는, 그래서 연예적 요소가 다분했고 독일의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배씨가 이번에 소개하는 하인의 세 번째 소설은 다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내용으로, 읽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자전적 작품이다. 작가의 슬픔에 동화돼 열흘 만에 번역을 마쳤다는 배씨는 “솔직하면서도 감정의 과잉을 억누르는 작가의 태도가 오히려 비애감을 더했다”는 소감을 밝힌다. 덧붙여 작가가 처음으로 ‘듣는 독자’가 아닌 ‘읽는 독자’를 의식하면서 한층 성숙해졌다고 평한다.
소설은 4월의 어느날 아들인 ‘나’가 어머니의 심상찮은 호출을 받는 것으로 열리고, 이듬해 1월 ‘나’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집안을 둘러보는 것으로 닫힌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유난히 친밀했던 모자 간의 올망졸망한 추억들이다. 부엌에서 요리하던 어머니와 도란거릴 때의 행복, 함께 영화를 보며 어머니 손바닥에서 집어먹던 과자의 달콤함, 여름캠프 기차를 놓쳐 울고 있는 ‘나’를 자가용에 싣고 먼 길을 달리던 어머니의 멋진 모습…. 정말 그렇다. 담담하게 말할수록 더욱 짙어지는 슬픔의 농도.
‘소설가 배수아’ 만큼이나 ‘번역가 배수아’도 다작이다. 번역 생활 3년 만에 벌써 일곱번 째 번역서다. 장편과 소설집을 각각 2권씩 내면서도 말이다. “사실… 번역 능력 기르기 차원에서 다른 필명으로 번역한 책도 있답니다.” 이 부지런한 작가는 계간지에 보낼 단편 집필과 장르소설 번역을 마저 마친 뒤 7월께부터 400쪽 넘는 장편소설 번역에 나선다.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독일 소설가 마틴 발저의 최근작이다.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아주 특별한 연애소설”이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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