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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이유기 교수 논문/ '노랫말로 본 1930년대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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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이유기 교수 논문/ '노랫말로 본 1930년대 국어'

입력
2007.04.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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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갑오개혁 이후 현대국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문자언어가 아닌 음성언어를 통해 1930년대 한국어를 따라가 보는 겁니다.”

동국대 국문과 이유기 교수는 28일 학술진흥재단 기초과제지원 사업으로 ‘1930년대 한국 유성기 음반 노랫말의 국어학적 가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최초의 음반인 <한인오·최홍매 외 3명: 유산기 등> 발매 100주년을 맞아 동국대 문화학술원이 교내 다향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이 교수는 1930년대 식민지 시대에 쓰였던 잊혀진 우리말의 흔적을 당대의 음성언어로 생생히 살려냈다.

이번 연구는 동국대 문화학술원의 대중문화연구소 한국음반아카이브 팀이 구축한 ‘한국유성기 음반 DB’ 자료에 수록된 1930년대 대중가요 436곡을 토대로 이뤄졌다.

분석 결과 노랫말은 현재의 우리말과 음운, 문법, 어휘 측면에서 상당 부분 차이를 보였다. 음운의 경우 자음보다 모음에서 갑오개혁 이전 근대국어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노년층이 쓰는 사투리도 있다.

모음은 전설모음, 단모음, 모음조화 등에서 현재와 차이를 보였다. ‘궂은’은 ‘구진’(<애수의 제물포> , <번지없는 주막> 등)으로 부르고, ‘애꿎은’은 ‘애꾸진’( <눈물의 신호등> )으로 노래하는 등 경구개음 뒤에서 모음 ‘ㅡ’가 ‘ㅣ’로 변하는 전설모음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부질없는’을 ‘부즐없는’(<명사십리> ), ‘아침’을 ‘아츰’( <물방아 사랑> , <홍도의 고백> , <어머님 전상서> 등)이라고 일컫는 경우다. 또 오늘날 ‘가셔요’ ‘말씀하셔요’ 등은 ‘가서요’( <비오는 나진항> ) ‘말씀하서요’( <애꾸진 달만 보고> )로 불렀다. 이 외에 ‘하늘’ 은 ‘하날’( <타향> ), ‘말씀’은 ‘말쌈’( <단장원> ), ‘얼굴’은 ‘얼골’( <나는 열일곱살이에요> , <항구야 울지 마라> 등)로 발음했다.

자음은 모음과 달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음과 모음 사이, 또는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된소리 또는 ‘ㄴ’이 개입하는 사잇소리 현상이 지금과는 달리 잘 나타나지 않았다. ‘빗방울’을 ‘비방울’(<눈물의 신호등> ), ‘옷소매’는 ‘오소매’( <꿈길 천리> ’, ‘뗏목’은 ‘떼목’( <압록강 뱃노래> )으로 노래했다.

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거나 ‘ㅇ’을 빼고 발음하는 등 북한이나 노년층이 사용하는 언어습관도 있었다. ‘이별’은 ‘니별’(<연락선 비가> ) ‘평양’은 ‘펴양’( <쌍쌍타령> )으로 발음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법 형태도 조사, 어미, 접사에서 차이를 보였다. 보조사 ‘일랑은’은 ‘을랑은’으로, 어미 ‘-는’은 ‘-난’으로, 어미 ‘-더이다’는 ‘-데이다’ 등으로 나타난다. “죽기 전에 잊을 길 바이 없으나 님을랑은 그래도 탈 없길 바라네”(<꽃이 피면> ), “그 누구를 기다리난 아가씨들이냐( <안개 속의 처녀> )”, “보고 싶데다, 처량합데다, 야속합데다”( <첫사랑 푸념> )” 등이 대표적이다. 평서문 어미 ‘-다’는 ‘-어라’로 표현된다. 즉 “궂은 비만 나려라( <세기말의 노래> )”는 명령문이 아니라 평서문이다.

어휘의 의미 면에서도 요즘과 다른 점이 많다. “꿈 하나 잘못 두어 헝큰 청춘아. 홍안령 흑룡강이 무궁한 벌판, 새 살림 새 나라의 신랑이 되자”에서 ‘신랑’은 ‘청년’을 의미한다. “기성 팔경이 기특하다”(<대동강 물결 위에> )에서 ‘기특하다’는 ‘기이(奇異)하다’를 뜻한다. ‘머리를 빨다’ ‘당신이 좋아요, 투철히’ 등 낯선 표현들도 나온다. 한편 ‘얽다’의 쓰임도 오늘날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우연히 정이 들어 얽혀진 사랑을”( <청춘야곡> ), “눈물로 얽은 저 하구는 섧다”( <항구의 하소> )” 등이 그렇다.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될 무렵의 유성기 음반을 토대로 한 이번 연구는 국어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교수는 “문자언어만을 통한 간접적인 국어사 연구에서 생생한 음성언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현대 국어사 연구 시대를 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사가, 가수의 출신 지역에 따른 방언이나 개인적 언어습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한계는 있다”면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옛 음성언어가 생생히 복원됨으로써 국어학 연구의 방법론을 한차원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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