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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필립 포레스트의 자전적 소설 '영원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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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필립 포레스트의 자전적 소설 '영원한 아이'

입력
2007.04.3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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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은 4년 전 12월 24일에 태어났다. 그래서 아이의 생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와 겹친다. 참, 운도 없지!” (425쪽) 그러나 지금, 이유는 치명적이다. 그 날은 아이의 마지막 생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겨우 네 살, 골육종.

소설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팔에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살덩이 공”(107쪽)이다. 이 소설은 골육종에 걸린 어린 자식을 입원실에서, 한 줌의 연기로 날려보내기까지의 심리적 궤적을 극사실적으로 그려 보인다. 프랑스 낭트대 불문학 교수 필립 포레스트(45ㆍ사진)의 <영원한 아이> 는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친부모에게까지, 병은 “아이의 상체가 드러나는 그 순간을 구역질을 참아야 하는 고통의 순간”으로 만들고 만다. 자식의 환부마저 구역질 나게 만드는 “악의 진실”(136쪽)이다. 싸움 앞에서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 딸아, 널 공포와 근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데려다 놓은 우릴 용서하렴.”(39쪽)

현대 의학이 확실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모든 치료가 절대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뿐이다. “방사선 촬영, 스캐너, MRI. 우리는 기계들과 그들의 신탁으로 이뤄진 잔인한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117쪽) 결국 외과적 처치만이 남는다. 그러나 너무나 큰 상실이 따른다.

“문제는 ‘공’과 함께 팔을 살짝 떼내야 할지 많이 떼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147쪽) 무수한 검사에도 불구, 환부를 열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현대 의학이란 인간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나서야 자신의 무력함을 실토하기도 한다. 마지막 수술은 결국 허망한 통과 의례였다. 한 번 면회하려면 철저히 씻고 소독하고 몇 겹의 막을 통과해야 하는 무균실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면역 기능이 완전 박탈돼 아이의 입 속은 아구창으로 입과 목구멍이 모조리 헐어버린다. 폐로 전이된 암은 급속히 커져 고열과 등의 통증, 호흡기 압박을 야기한다.

부모의 고통과 상실감은 더 크다. 무균실의 아이를 멀찌감치 나마 볼 수 있는 면회 대기 소독방에서 부모는 “몇 세기라도 보낼 각오가 돼 있”(449쪽)었다. 수술 전 합병증 대비를 위한 2주 입원에서 갖가지 책과 비디오를 본 아이를 저자는 “혁명의 대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원칙에 우호적인 자발적 레닌주의자”(491쪽)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했다. 결국 죽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마지막 수술은 살 아래서 행해진 일종의 살육이었다고 책은 쓴다. 오른쪽 폐와 기관지 일부는 제거됐고 대정맥 일부는 인공 혈관으로 대체됐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했다. 말러가 가곡 <죽은 자식을 그리는 노래> 에서 읊었던 그 절통한 심정을 이 소설은 추체험하게 한다. 화장터의 연기를 보고난 뒤, 아버지는 애써 믿으려 한다. “거기에는 더없이 멋진 저 너머의 세계가 있다”(281)고.

그는 마침내 풀어줄 수 있었다. 자식을, 자신을.

영원한 아이, 필립 포레스트 지음ㆍ이상해 옮김, 열림원 발행ㆍ541쪽ㆍ1만2,800원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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