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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딜레마의 뿔' 展/ 예술가로 살아온 삶의 궤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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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딜레마의 뿔' 展/ 예술가로 살아온 삶의 궤적 엿보기

입력
2007.04.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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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가들은 어떻게 해서 그 길로 들어섰을까. 창작의 과정은 어떠하고, 먹고 사는 건 또 어떤가.

일민미술관이 27일 시작한 기획전 <딜레마의 뿔> 은 그런 궁금증에 어느 정도 답이 될 것 같다. 미술가가 된다는 것, 또 미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1968~73년 이 땅에서 태어난 여섯 명의 30대 작가들이 그동안 경험한 많은 기억과 고민을 자료 중심으로 고백하듯 보여준다. 어린 시절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장부터 성장기의 습작,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헤맨 온갖 시도의 흔적들, 더러 헛짓 같고 열패감과 자부심을 오가는 창작물, 먹고 사는 일의 지겹고 고달픈 자취를 간직한 잡동사니까지 죄다 모아 작가마다 방을 꾸몄다.

김월식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뜯어온 마룻장을 깔아서 작은 무대를 만들고 그 옆에 작가 활동 중간 결산 같은 설치작품을 놓았다. 커다란 고무 보트에 폐지로 만든 책 읽는 소녀 상, 첫 번째 개인전 때 받은 화분, 당시 전시작의 캔버스 틀을 쪼개서 만든 모형 비행기와 성냥, 자신에게 수여하는 트로피를 태우고, <천국의 불빛> (벌레잡이용 형광등)과 <명성의 날개> (‘명성갈비집’의 환풍기 날개), <자유의 소리> (스피커)를 한쪽에 쌓아놨다. 작가는 “비행기는 한 번도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나의 예술을, 성냥은 한 번도 정열적으로 타오르지 못한 예술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며, “(예술의) 천국과 명성과 자유는 돈 주고 샀다”고 설명한다. 전시 개막식에서 그는 자신을 위한 기념비 혹은 예술가의 방주 같은 이 작품 옆 둥근 무대에서 직접 작곡한 트로트풍 음악 <오빠의 청춘> 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춤으로써, 다시 시작임을 다짐하는 자축을 했다.

사사와 박미나가 함께 작업한 전시실은 미술 전시장이 아니라 무슨 자료관 같다. 벽 하나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다가왔던 1970~80년대의 주요 사건과 인물, 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신문기사와 사진으로 도배했다. 색채 연습과 실험 등 박미나가 해온 고민의 흔적, 편집증적 수집벽으로 온갖 기억과 사건을 모으고 분류하고 전시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사사의 그 오래된 기질의 자취가 벽과 유리 진열장을 차지했다. 사사가 이번 전시에 맞춰 만든 2006년 개인 보고서는 그가 1년 간 먹은 설렁탕과 자장면 몇 그릇, 교통카드 사용 몇 회, 구입한 책 몇 권, 휴대전화 통화 몇 건, 그의 작업실에 드나든 사람들의 출퇴근 기록까지 몽땅 통계를 내서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사사의 이런 작업은 기존 미술과는 확 다른 길을 걷는 그만의 예술적 시위다.

류현미와 진훈의 전시는 예술가와 생활인, 두 길 사이에 끼인 압박감을 보여주는 소지품과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류현미는 미대를 중퇴한 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20대 시절의 방황과, 예술가로 사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번민을 글로 써서 작은 책자로 묶었다. 진훈의 방에는 그의 작업실 모형과 습작, 최근작 외에 빨간 찜질팩과 대패도 있다. 난방이 안 되는 작업실에서 먹고 자면서 추위를 견디려고, 제대로 된 캔버스 틀을 살 돈이 없이 직접 나무를 깎고 손질하는 데 썼던 것이다.

민중미술 진영에서 활동해온 배인석의 방에는 팸플릿과 성명서, 구호 등 그의 정치적 발언과 관심을 드러내는 것들도 보인다.

이번 전시가 드러내는 작가들의 초상은 좌충우돌인지 진퇴양난인지, 앞길이 창창한지 막막한지, 행복한지 비극적인지 헷갈리는 점이 없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들은 터무니없이 진지하고 예민하며, 좌절과 번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이들을 걱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시는 5월 31일까지. (02)2020-2055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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