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친 이슬람 정부와 세속주의 지지 세력인 군부가 정면 충돌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29일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100만명 이상의 터키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경찰 추산으로 100만명이 넘는 터키 국민들은 이날 터기 국기를 흔들면서 전국에서 이스탄불 중심가로 몰려들었으며 친 이슬람 정부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집회 장소는 시민들이 망토처럼 둘러싼 터키 국기로 붉은 빛 바다를 연상시켰으며 자동차나 오토바이, 빌딩 등에도 온통 붉은 색 국기들이 걸렸다. 이에 앞서 2주 전 앙카라에서 열린 유사한 시위에도 3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터키 재계 단체인 터키상공인협회(TUSIAD)도 성명을 내고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즉각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측의 갈등이 첨예해진 계기는 여당이 내세운 유일한 대통령 후보인 압둘라 굴 외무장관에 대한 의회의 1차 투표였다. 세속주의 성향 야당들은 27일 열린 이 투표를 모두 보이콧했으며, 유효성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의 판결은 의회 2차 투표 예정일인 내달 2일 전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군부는 선거 후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으며 그 진행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성명은 “터키군은 이번 논란의 한쪽 당사자이며 세속주의의 절대적인 수호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60년부터 세 차례나 쿠데타를 일으킨 터키 군부는 근대 터키의 국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기반을 다진 세속주의 원칙이 친이슬람 세력에 의해 위협을 받을 때마다 정치에 개입해 왔다.
이에 대해 정부 대변인인 세밀 시섹 법무장관은 “군부의 성명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인 것 같다”면서 “민주 국가에서 군부는 법이나 정부의 명령을 받을 뿐, 그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굴 장관도 29일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는 대통령 후보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터키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연합(EU)도 군부의 개입 움직임에 대해 경고했다. EU 회원국 확장 담당 집행위원인 올리 렌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터키 군부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지에 대한 시험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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