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중소 도시 빌바오. 15세기부터 철광석 광산을 바탕으로 한 공업 도시로 성장해왔지만 20세기 이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데 1997년 이후 빌바오는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연간 2,00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관광 도시로 탈바꿈했다. 이유는 단 하나. 미술관 때문이었다.
빌바오시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유럽에 분관을 낸다는 정보에 주목, 이를 유치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비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들어냈고,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에 예술적 가치가 더해지면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이스 마케팅’, 즉 공간 활용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건축물의 경우 건립 뿐 아니라 유지를 위해서도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까지 고려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건축디자이너인 저자는 도시 속 기업의 건물은 기업이 존재하는 공간(place)일 뿐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마케팅할 수 있는 공간(space)이라고 말한다.
파리의 에펠탑, 광고판으로 뒤덮인 뉴욕의 브로드웨이, 런던의 신청사, 도쿄 아오야마의 프라다 매장…. 도시를, 기업을 상징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공간들이다. 저자는 수익성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건축물들은 결코 이런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20세기 이후 건축물들은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대부분 예술적 가치가 제거된 채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살아남은 것은 순수성을 가진 건축물들이라는 것.
이 책은 ‘좋은 디자인 자체가 곧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주장을 속도감 있게 펼쳐나간다. 소니의 상품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연출한 쇼룸인 ‘소니 스타일’이나 하나의 마을처럼 꾸며진 나이키의 ‘나이키타운’은 체험을 통한 스페이스 마케팅 사례들이다.
상업성을 내세우지 않고 조형적 측면을 강조한 루이뷔통의 매장은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더 깊이 각인시킨다. 커피 문화에 혁신을 일으킨 스타벅스는 본사 직원의 10%를 인테리어 부서에 집중시키고 있으며, 맥도날드도 정크푸드의 이미지를 씻기 위해 지역별로 매장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일본 화장품회사 시세이도는 긴자의 시세이도 빌딩을 미술관과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이뤄진 복합 공간으로 꾸몄다.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마케팅 방식을 택한 것이다.
다양한 사례와 생생한 사진들은 공간 활용이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스페이스 마케팅’이라는 시선을 끄는 용어를 통해 ‘건축에서도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있다는 아쉬움도 함께 남는다.
홍성용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발행ㆍ416쪽ㆍ1만5,000원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