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 발음을 연습해 봐요. 까마귀가 어떻게 울지?”
“까악~ 까악~”
“이번엔 ‘오’ 발음.”
“꼬끼 오~.”
25일 오후 경기 김포에 있는 한 대형마트 문화센터. 초등학생 저학년을 상대로 말하기 강좌가 한창이었다. 1~3년생 22명은 각자 선글라스를 끼고 발음ㆍ발성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없거나, 발음이 부정확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수업’이다. 선글라스를 쓴 이유도 간단하다. 주변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말하는 연습에만 전념토록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한 달 째 수업을 받고 있는 박유나(김포 운양초1)양은 “전에는 발음이 또렷하지 못하다는 얘기에 마음이 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 발표할 때 자신감이 생긴다”고 환하게 웃었다.
“말 잘하고 싶어요”
유아나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말하기 교육이 관심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말을 잘해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져 있는데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어고나 대학 입시에서 구술면접이 당락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발표 수업이 보편화되다 보니 내성적인 학생들은 더욱 걱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조우영(인천 불로초3)군은 “학교 교실의 자기 자리에서는 발표를 곧잘 하는데,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땐 또 다르더라”며 ‘남 앞에서 말하기’의 두려움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서울 구로구의 한 유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원아에게 일주일에 2번씩 ‘스피치 트레이닝’을 한다. 발성 연습을 통해 목소리를 트이게 하고 주장 뒤에 근거나 예시를 들게 하는 식이다. 유치원 관계자는 “강의 시작 전 원생들의 목소리를 녹음했다가 수업을 한지 약 석 달 후와 비교해서 들으면 발음이 좋아지고, 말 솜씨가 더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기에 부쩍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또 있다. 인터넷과 게임 등으로 주변과 담을 쌓고 지내는 아이들이 늘면서 표현력이 떨어지거나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비속어나 은어 등을 실생활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일이 다반사가 된 까닭에서다. 스피치 교육 전문강사호수기(40ㆍ여)씨는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어이가 없을 때 ‘어헐~’, 다른 친구가 자기 앞에서 까불 때 ‘깝치지 마’ 등 매우 이상하고 거친 말을 사용하는 광경에 놀라 뒤늦게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말 잘하게 하려면
자녀를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양사이버대에서 스피치ㆍ화법 등을 강의하고 있는 문준우 교양학부 교수는 “탁구 게임을 하듯 평소 대화하라”고 조언했다. 탁구란 한쪽이 공을 받아 쳐서 넘길 때까지 다른 한쪽은 공을 건드릴 수 없는 스포츠다. 아이가 우선 하고자 하는 말을 전부 쏟아낼 때까지 부모는 참아줄 필요가 있다. 엄마가 답답하다고 말을 자르고 바로 핀잔을 주면 아이에겐 부정적인 자아가 형성되며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아이가 일단 입을 열면 보충 설명을 이끌어 내거나, 되묻는 등 간단한 지도 만으로도 언어의 유창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아이가 말을 잘 안 하려고 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학부모가 의외로 많다. 이 때 돌이켜봐야 할 점은 말하는 능력은 대화를 통해 생긴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에 응답을 하는 과정을 거치며 말의 의미 구성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김선민(인왕초) 교사는 “책 읽어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들과 우선 대화하라”고 주문했다. 특히 말로 문장을 만드는 능력이 갖춰지는 8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하루 일과를 묻고 답하는 부모와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
토론과 발표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갖춰지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토론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첫걸음이다. 김경아(상암초) 교사는 “상대방의 주장에 오류는 없는지, 자기 생각과 어떤 점이 다른 것인지 비교하면서 듣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이를 위해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중요한 내용은 메모하면서 듣는 연습을 할 것”을 권했다. 발표를 잘 하려면 의식적으로 말을 천천히 크게 하고, 몸짓(제스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물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은 철저한 준비다.
말 잘하는 비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평소 대화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류덕엽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어른에겐 반드시 높임말을 쓰고, 도서관에선 목소리를 낮게 한다’ 등 주어진 상황에 걸맞은 말이 어떤 것인지 깊게 생각해 보는 일이 말을 잘 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박원기 기자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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