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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표작가 호세, 장편 '에르미따' 한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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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표작가 호세, 장편 '에르미따' 한국 출간

입력
2007.04.2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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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첫 고객은 아시아의 부호로 손꼽히는 사람이야. (중략) 자신의 부를 이용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쾌락을 맛본다고 했어.”(186쪽) 고급 창녀로 첫발을 디디는 에르미따를 ‘교육’ 시키는 자는 뚜쟁이가 아니라 외교관이다. 그녀는 자신이 상대하는 거물 정객을 ‘각하’로 부르라고 교육 받는다.

필리핀의 대표 작가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82)가 장편소설 <에르미따> 의 한국 출간에 맞춰 부인 테레시타 호세(78)와 함께 방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1988년 발표한 <에르미따> 는 1945년 미군이 일본으로부터 필리핀을 탈환하는 때를 기점으로 해 개발 열풍이 한창이던 70년대까지의 필리핀을 고급 창녀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우리도 썩어가는 구렁텅이 속에서 함께 뒹굴고 있는 거야.”(294쪽) 동료 창녀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피식민의 경험은 부패한 관료를 중심으로 군대와 향락 문화, 다국적 자본 등 현실적 모순으로 이어진다고 소설은 폭로한다.

“일본과 미국에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필리핀에서 매춘은 사회적 함의를 갖습니다.” 호세가 매춘을 소재로 삼은 이유다. 그는 출판 기념회에서 “사실 필리핀에서는 매춘이 소설의 인기 테마가 아니다”며 “그러나 이를 통해 현재 상황을 형상화하고 강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부패한 관료 집단 등 필리핀의 모순을 고발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소설은 에르미따에게 상원 의원, 언론 재벌, 장군 등이 굴복하는 과정을 노련한 솜씨로 그려낸다.

호세는 부정부패와 독재에 저항하다, 마르코스 치하에서 판금과 연금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91년 아키노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한 그의 저항정신은 소설 <에르미따> 에 이르러 대중성까지 확보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과 모순을 축으로 삼는 그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로부터 “영어로 글을 쓰는 필리핀 최고의 소설가”라는 등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러시아에서만 1만부가 팔렸다.

50년대 첫 방한해 작가 김은국 한무숙, 언론인 장준하, 사학자 김준엽 등과 친교를 나눈 그는 며느리까지 한국인으로 둔 지한파다. 호세는 “며느리 덕에 한국 상황에 매우 관심이 많다”며 “남한이 북한에 쌀을 지원한 사례가 말해주듯 통일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에서 불안정한 사회는 반드시 안정된 사회로 편입되게 마련이죠.”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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