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사람에게 시달리고 부대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만들고 성가시게 괴롭히는 사회다.
한국인들 중에는 천박하거나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공공의 예절에 어둡거나 무지하다. 지하철이나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밀치고 들어온다.
그리고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큰 소리로 휴대폰통화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을 가운데 세워 둔 채 사람을 건너 자기네 일을 이야기한다. 듣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은 큰 고통이다.
● 디서나 천박하고 버릇없고
그리고 자기만 엘리베이터에 타면 무조건 닫힘을 눌러 버린다. 다른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내릴 때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밖으로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닫힘으로 손이 간다.
길거리에서는 남을 밀치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들은 서로 어깨도 닿지 않으려고 조심한다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무모하게 과감하고 지나치게 용감하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일반화하지 않았을 때 공중전화를 걸고 나오다가 어떤 젊은 여자에게 욕을 먹은 일이 있었다. 한여름 더운 날씨에 기다리느라 짜증이 났겠지만 내가 그렇게 오래 통화한 것도 아닌데도 소리를 질러대 어이가 없었다.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줄 설 줄도 모른다. 은행은 대개 한 줄로 서기를 하는데, 바닥에 줄이 그어진 곳에서 기다리다가 어느 쪽이든 자동 입ㆍ출금기에 자리가 나면 그것을 이용하도록 돼 있지만 그런 개념 자체가 아직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의 우리나라 은행지점에서 근무했던 사람이 들려 준 이야기는 재미있다.
1층에 미국 은행이 있고 2층에 그가 일하는 은행이 있었는데, 1층에서는 줄도 잘 서고 질서를 잘 지키던 재미동포들이 2층의 우리나라 은행에서는 엉망이더라는 것이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아래층에서는 그렇게 줄도 잘 서면서"하고 물으면 "글쎄요"하는 식이었다. 1층은 미국이고 2층은 한국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거나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과 행동이 몸에 밴 탓이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버릇이 없고 제 멋대로이며 남을 배려하지 않을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올림픽 월드컵을 치른 나라, 수출 3,000억 달러를 달성한 나라라고 자랑하기 어려울 만큼 국민들의 인격이 낮다. 너무 가난하고 헐벗고 살아서 그런지, 경쟁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믿어서 그런지 예의와 염치를 잃어버렸다. 무엇이든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한국은 이미 다문화사회 다인종사회 혼혈사회다. 지난해 결혼자의 8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었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40만 명 이상 살고 있다. 배달의 자손이나 한 민족임을 자랑하는 배타적 순혈주의를 버려야 할 때다. 상대와 나의 다른 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개방성과 타인들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절실하다.
● 공공의 예절부터 몸에 배야
겉으로야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조승희씨 사건은 한국인의 이미지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쳤다. 그 충격은 오래 갈 것이다.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혹시 잊을지 몰라도 우리로서는 그가 한국인이었다는 점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그를 의식한 듯 며칠 전 시민권 수여식 에서 "(출신국의)차이는 (미국의)힘의 원천"이라며 "출신국이 어디든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진실로 미국시민의 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우리 책임을 인식하고 서로에게 공공의 예절을 갖추고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참 좋은 말이다. 한국인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된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어가는 사회, 사람 때문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은 사회, 공정하게 경쟁하고 승부에 납득하는 사회, 한국도 어서 그런 사회가 돼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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