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62주년이다. 마침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1위로 이순신 장군이 꼽혔다는 소식이 들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날이 되면 초중고교 운동장에는 이런 스피커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보라,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일생을 오직 한 길,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나라를 구하려고 피를 뿌리신 그이시다/ 충무공! 오, 충무공! 민족의 태양이여/ 충무공! 오, 충무공, 역사의 면류관이여!"
■ "민족의 태양"이나 "역사의 면류관"이라는 헌사가 느끼하기는 하지만 당대의 문필가인 노산이 작시하고, 김동진이 작곡을 했는데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이 폼을 잡았다 한들 무슨 사특함이 있겠는가.
일점일획이 틀림없는 노래요 가사다. 그런데, 요즘 사오정에 황혼이혼에 전전긍긍하는 우리 같은 장삼이사에게 충무공은 정말이지 감당이 불감당이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수신제가에 치국평천하를 완비하셨다니 어쩌란 말인가? 하여, 아버님이 순임금 같은 신하가 되라고 기대했던 공의 약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 "아침에 흰 머리털을 여러 오라기 뽑았다. 백발이 무에 어떻겠는가마는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난중일기 1593년 6월 12일자). 이 해 10월 14일자 자식 생각은 또 어떠하였던가. "새벽 두 시쯤 꿈에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 떨어졌으나 쓰러지지는 않고 막내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는데 깨어났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 두 글자가 쓰여 있어 (아산서 일본군과 싸우다) 면이가 전사했음을 알았다."
■ 아버지의 애달픔은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라는 말로 이어진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느냐! 내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울부짖을 따름이다."
충무공은 구국의 영웅으로, 요새는 위기를 돌파하는 처세ㆍ경영학의 선구자로 각광을 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 이해한들 틀린 구석이 있으랴. 그러나 요즘은 왠지 걱정 많은 가장, 근심 많은 아들 순신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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