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2007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행사. 한 기자가 8개 구단 감독들을 상대로 질문을 던졌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야구는 무엇입니까?" 감독들은 저마다의 '야구철학'을 내세워 취재진과 팬들에게 성의 있게 답변했다.
단 한 명 예외가 있었다. 8개 구단 사령탑 중 최연소인 삼성 선동열(44) 감독은 뚱한 표정으로 "재미있는 야구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며 퉁명스럽게 질문을 받아 넘겼다. 선 감독이 이날 다소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초보 사령탑으로는 사상 첫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제패의 위업을 달성하고도 '삼성 야구가 재미없어졌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공격 패턴과 선발 보다는 불펜에 더 비중을 두는 '지키는 야구'가 팬들을 운동장에서 내쫓는다는 지적이었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지난해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서도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는 대만 라뉴 베어스에 패한 것도 선수들이 평소 벤치 작전에 따라 경기 하는데 익숙한 나머지 정작 큰 경기에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선 감독은 평소 "이기는 야구가 재미있는 야구"라는 지론을 펴왔지만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스프링캠프에서는 "올해는 공격야구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 경기를 보면 지난 2년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선 감독은 지난 24일 KIA전에서 1-0으로 앞선 4회 무사 2루에서 9번 조동찬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한 뒤 계속된 1사 1ㆍ3루에서는 신명철에게 스퀴즈 번트 사인을 냈다. 25일 경기에서도 2회와 5회 중심타자인 5번 진갑용에게 연거푸 희생 번트를 지시했다. 총 4차례 번트 시도를 통해 뽑아낸 점수는 단 1점에 불과했다.
물론 감독의 고유권한인 작전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또 번트는 야구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항상 똑 같은 상황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패턴화된 작전은 야구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26일 현재 팀 타율이 최하위(0.230)에 머물고 있는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삼성은 선 감독의 당초 기대치 이상인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명색이 서울팀이 시즌 초반 낙오해서 관중 2,000명을 앉혀 놓고 야구할 수는 없다"며 한시적으로 '번트 야구'를 선언한 공동 꼴찌 두산 김경문 감독의 변신은 참신하다. 팬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고객 우선주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주이기도 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최근 한국경제가 샌드위치 처지에 놓인 상황에서 고객을 위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창조 경영'의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과연 삼성 야구단은 한국프로야구의 위기 속에서 구단주의 철학에 얼마나 부합한 '창조적 플레이와 경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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