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동유럽 슬로바키아의 질리나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공장 준공식장. 겉으로는 기아차의 행사였지만 실제로는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 행사를 방불케 했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축사를 통해 공장 준공의 의미를 간략히 언급한 후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에게 “여수가 박람회를 유치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전날 만찬에서도 5편의 영상물이 소개됐지만, 4편이 여수 엑스포 유치와 관련한 것이었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준공식 후 “정 회장이 사실상 엑스포 유치 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참여정부의 가장 잘한 일은 정경유착을 단절한 것”이라며 재벌과의 선 긋기에 주력하던 2년 전의 모습은 찾기가 어려웠다.
정 회장과 정부 엑스포 유치단은 25일에는 현대차 공장 기공식이 열린 체코 노소비체로 자리를 옮겨, 체코 정부 관계자를 상대로 한국 지원을 호소했다.
정몽구 회장의 부친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81년 서울올림픽 유치에 발벗고 나서 성사시킨 바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최근 세계 각국의 유력인사들과 만나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사업보국’ 명분아래 본업과는 무관한 일에 뛰어든 것이다. 다국적 기업 가운데 애국심 발휘가 경영 이념인 회사는 우리나라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반재벌 정서를 부추겨온 재계의 불투명한 경영관행은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도 기업들에게 애국심 발휘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우물안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사업보국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철환ㆍ산업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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