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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의 미디어 비평] 버지니아 총기참사 보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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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의 미디어 비평] 버지니아 총기참사 보도의 교훈

입력
2007.04.2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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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공대 캠퍼스 총기참사 사건이 아직도 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조승희 쇼크”로부터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를 되돌아 볼 때다. 더불어 국내외 언론이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었는지를 꼼꼼히 따져 볼 때가 됐다.

이런 유형의 사건을 보도할 때는 인종적 편견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여론을 오도해 또 다른 사건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군사적 외교적 정책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허스트 계열 신문의 선정적 보도가 1898년 미-스페인 전쟁의 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일본계 미국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잘못된 인종정책에 의해 격리 수용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로드니 킹에 대한 LA 경찰관의 구타장면이 반복적으로 TV전파를 탄 후에 인종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17일 오전 뉴욕타임스 인터넷 신문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건이 터졌다는 기사를 읽게 됐다. 용의자는 “아시안으로 추정된다”고 짧게 보도됐다. 국내 언론에선 대부분 시카고 선-타임스를 인용해 “중국인이 범인”이라고 단정짓는 보도를 했다. 버지니아 참사보도에서 국내언론은 삼각확인을 하지 않은 채 외신을 그대로 인용, 용의자 신분에 대한 오보를 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국내보도를 보면 “한국인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속내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상징적인 인종편견주의(symbolic racism)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17일 밤부터 국내 인터넷과 TV 뉴스에서 총격범이 “한국 국적의 미 영주권자 소지자”로 보도됐다.

18일자 조간신문은 전날 인터넷신문 보도와 달리, 대부분 일면 톱으로 총기난사 범인이 “한국인”(한국일보), “한인 1.5세” (중앙일보), “한국 교포학생”(조선일보), “재미동포 학생”(한겨레)임을 부각시켰다. 국내언론은 전날의 오보를 상쇄하려는 듯 “용의자는 한국인”라는 사실전달을 넘어서 “한국인이 죽였다”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나아가 이 참사가 한미FTA나 비자면제 협상, 미주한인의 안전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은 서로 관련되지 않는 두 사안을 마치 ‘환상적인 상관관계(Illusory Correlation)’가 있는 듯이 연결시켰다.

이러한 보도 때문인지 대통령이 세 번이나 미국인에게 애도를 표했으며, 주미대사는 재미한인에게 32일간 순회단식을 요청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또한 미주한인에 대한 보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추측기사를 내보내는 바람에 루머가 증폭되기도 했다. 한 유력 일간지는 “한 때 범인 몰렸던 중국 ‘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화장실 낙서 정도로 여겨지는 천박한 댓글들을 일반 중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듯이 그대로 인용 전달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초기보도에서부터 “용의자가 중국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는 차별성을 보였다. 이 신문은 나아가 총기참사와 용의자의 신분을 연결시키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18일자 1면 제목에서 ‘총기난사자는 학생(Gunman Identified as a Student)’이었고, 본문에서도 “조승희가 한국계”라는 사실은 사건묘사와 관련 없는 문단에서 짧게 두 번만 언급했다. 그 중 하나도 한국사회의 과잉반응과 연결돼 있었다.

이번 참사에서 국내 언론의 초기 보도는 한국 저널리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밑바닥까지 보여줬다. 인종적, 문화적 문제를 민감하게 다룰 수 있도록 저널리즘 교육을 재정비할 때다. 사건보도에 대한 취재원칙도 시급히 새로 세워야 한다.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보도를 하면서도 한가지 다행스러웠던 일은 국내 언론이 시간이 지나면서 취재보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갔다는 점이다. 우리 언론은 젊고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사실을 실감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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