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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종갈등과 언론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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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종갈등과 언론의 책임

입력
2007.04.2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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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은 1992년 발생한 LA 폭동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주 한인 이민 104년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이 폭동으로 한인 1세 이민자들이 엄청난 희생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이 불행한 사건의 결정적 가해자는 폭동을 일으킨 흑인들이 아니라, 한인들에게 불리한 편파적 보도를 일삼은 LA 타임스 등 미국의 주류 언론이었다.

언론은 도심지에서 발생한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의 마찰을 인종 갈등으로 부각시켰다. 이런 행태는 두순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한인 식품상인이 체구가 장대한 흑인 소녀 좀도둑에게 3차례나 얻어 맞고 방어본능에서 총을 쐈는데도, 언론은 지체 없이 한ㆍ흑 갈등으로 확대 보도했다. 1년 전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의 분노를 삭이고 있던 흑인들에게 분풀이의 대상을 던져준 것이다.

사건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면 관련자의 인종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언론의 기본원칙은 휴지조각이 됐다. 주류 언론들은 첫 보도부터 두씨를 '한국 태생 식품상'으로 일컬어 흑인 시위를 조장했다.

사건 직후 LA 경찰국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에 한인과 흑인이 관련됐지만 인종갈등은 아니라고 밝혔다. 재판기록에도 인종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 사건 뒤 미국 언론은 이중적 자세를 보였다. 1993년 LA 지역에서 한인이 관련된 총격사건이 43차례 발생, 한인 19명이 살해됐다. 가해자는 모두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었다.

주류 언론은 이 사건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단지 몬로비아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한인 샘 우씨가 흑인 소년에게 피살된 사건을 보도했는데, 이 때도 이들의 인종 배경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인이 가해자일 때는 굳이 인종을 밝혔다.

다행스럽게도 그 뒤 이 같은 이중적 보도자세는 바뀌었다. 1996 년 초, 한인과 흑인이 관련돼 '제2의 두순자 사건'으로 번질 뻔한 '모자가게 사건'보도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일부 흑인이 합세, 인종차별을 주장하며 가게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LA 타임스는 한인 업주와 흑인 고객의 입장을 대등하게 다루는 사려를 보였다.그 결과 시위 주동자들이 꾀한 인종갈등 사태는 없었다.

이렇게 된 데는 LA 타임스가 한인 동포 카니 강 기자와 흑인 안드레아 포드 기자가 함께 사건을 취재ㆍ보도하게 한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됐다.

포드 기자는 과거 두순자 사건 보도를 도맡아, 한인에게 일방적으로 편파적인 보도를 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모자가게 사건에서는 한국어 구사력과 문화적 이해를 지닌 강 기자가 공정한 보도를 이끌어 불상사를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

모자가게 사건 이후 한ㆍ흑 갈등을 부추키는 왜곡보도는 거의 없다, 그러나 미국 언론이 한인과 다른 인종이 얽힌 사건에서도 편파적 보도를 하지 않으리라는 신리는 아직 충분히 다져지지 않았다.

최근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뒤에도 한인들은 자칫 인종갈등으로 비화할 것을 내심 크게 우려했다. 미국 언론은 지금까지 이 사건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미국 언론과 사회를 향해 공정한 보도와 인식을 적극 요청하고 편파보도를 바로잡는데 앞장 서는 한인 권익옹호 기구나 단체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도 이런 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편집자 주:필자는 4.29 폭동 당시 한국일보 미주본사 영문판 국장으로 일했다.)

임갑손 미국 퍼시픽 뉴스서비스 기고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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