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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라진 조승희 추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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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라진 조승희 추모石

입력
2007.04.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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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가 총기참사 사건의 크나큰 아픔을 딛고 수업을 재개한 23일(현지시간), 이 대학 중앙 잔디밭에 놓여 있던 범인 조승희씨에 대한 추모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목숨을 빼앗긴 희생자 32명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추모석들 사이에서 함께 자리를 지키던 조씨의 추모석을 누군가가 치워 버린 것이다. 조씨 추모석을 갖다 놓은 마음이 외로웠을 그를 불쌍히 여긴 것이었다면 추모석을 조용히 사라지게 한 마음은 아무리 뭐라 해도 도저히 조씨의 범행을 용납할 수 없다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들은 아마도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버지니아공대는 이날 수업을 재개하기 앞서 가진 '침묵 추도식'에서도 희생자들만을 위해 32번의 타종을 하는데 그쳤다.

사라진 조씨의 추모석 대신 놓여 있던 편지에는 "조, 너는 우리의 힘과 용기, 동정심을 과소 평가했다. 너는 우리의 가슴을 찢었지만 정신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사랑이 결국에는 언제나 승리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편지에는 조씨를 용서해야겠다는 생각보다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조씨의 만행을 용서하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씨의 범행을 쉽게 망각 속에 묻지 않고 극복하려는 정신은 그저 용서하려는 마음보다 더 값지고 우리에게 더 희망적이다.

미국 내 한인 동포사회가 느꼈을 충격은 미 국민들이 짊어져야 했던 것 보다 훨씬 심했을 것이다. 한인 동포들은 고통을 함께 나무면서도 혹시나 한인들이 보복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를 우려해야 했다.

그러나 자칫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위축될 수 있었던 상황을 한인 동포들은 나름대로 잘 헤쳐 나오고 있다. 더러 이 같은 피해의식 때문에 빚어진 과민함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 동포들은 이를 잘 조절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 동포들은 한인들의 이민생활에 대해서도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조씨와 그의 가족이 느꼈을 이민생활의 고단함과 절망감은 크든 작든 모든 한인들이 공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경우를 극단적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오히려 우리 동포들은 서울의 과잉 대응을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조문사절단 얘기까지 나오면서 미국보다 더 혼란스러웠고 더 성숙하지 못했던 반응을 보인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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