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집 밖으로 나가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다가, 아파트 화단 한 가득 이제나저제나 터뜨릴 날만 기다리고 있던 연분홍색 철쭉 꽃봉오리들을 만났다.
플러스펜 뚜껑처럼 뾰족하게 날이 선 철쭉 꽃봉오리들은, 주차장 매연과 황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제 오월이 되면 꽃대의 꼭대기 끝에 다시 여러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피어날 것이며, 아파트 단지 아이들은 그 꽃을 함부로 꺾어 놀이터에서 이래저래 찧고 까불며 소꿉장난을 할 것이다.
그러니, 아직 봄은 한참이나 더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셈이다. 이곳저곳에서 봄이 없어져 간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가 온난화된다고,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넘어간다고, 몇몇 자료들을 제시하며 투덜투덜, 걱정들을 많이 한다. 걱정들을 하면서, 정작 주위를 둘러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온난화다 어쩐다 하지만, 철쭉은 철쭉대로, 벚꽃은 벚꽃대로 우리 곁을 그대로 지켜주고 있다. 피어나는 철쭉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다가, 정작 꽃이 지면 서운해한다.
앗, 언제 벚꽃이 졌냐? 아아, 역시 온난화가 문제야. 이런 식이다. 제 마음이 온난화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계절만 서둘러 간다고 탓하니, 그저 머물다가는 봄만 서운할 뿐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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