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내은행과 외국계 은행이 동등한 조건 아래 무한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
23일 HSBC, 스탠더드차터드, 홍콩계 동아은행, 씨티은행 등 4개 은행이 중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위안화 소매금융 업무를 시작했다. 외국계 은행의 첫 소매금융이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5주년인 지난해 12월 금융부문을 개방했는데, 이날 100만 위안(1억2,000만원) 이하 정기예금 등의 취급을 금지하던 규제가 풀린 것이다.
중국 언론은 23일 오전 베이징(北京) 시내 동아은행의 문이 열린 직후 몇몇 중국인 고객들이 은행 직원들과 상담하는 모습의 스케치성 기사를 전했다. 동아은행은 "첫날 중국 고객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며 "금리 등에서 중국은행과 별 차이는 없지만 차별화한 서비스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외국계 은행의 특화한 서비스는 부유층을 겨냥한 프라이빗 뱅킹이다. 이들 은행은 계좌 관리비로 매달 최소 10위안(1,200원)을 받는다. 씨티은행의 경우 매월 8만 위안을 예금하지 못하면 통장 관리비로 무려 100위안을 공제한다. 부자가 아니면 거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점포수가 매우 적고 직원 봉급 수준이 높은 외국계 은행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중국 전역에 고작 100개 정도의 지점을 갖고 있는 4개 외국계 은행들이 수 만개의 점포를 거느린 국내 은행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결국 외국계 은행들은 베이징,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선전 등 주요 거점 도시에 집중하면서 5,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부자들의 예금 유치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분간 중국 금융계에 이들 외국계 은행이 미칠 영향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우선 외국계 은행의 소매금융 진출이 보편화 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조만간 ABN암로, 미즈호 은행 등도 소매금융을 개시하고, 한국계를 포함한 많은 외국계 은행들이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73개 외국계 은행들의 절반 이상이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중국 소매금융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 은행들의 외국 은행 인수ㆍ합병(M&A)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외국계 은행들이 중국은행 지분을 확대하는 등의 공격적 진출도 예상된다.
한국계 은행으로는 우리ㆍ신한ㆍ하나은행 등이 머지않아 중국에서 소매금융을 개시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영섭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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