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집에 살다 함께 어울리니까 천국이 따로 없어요. 이곳이 바로 천국이에요.”
24일 전북 김제시 황산면 남양리 ‘수이제’ 경로당.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교과서를 펴놓고 모여 앉아 황산면 사회복지사 박세현(29ㆍ여)씨의 지도로 한글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이 경로당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 18명이 한솥밭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자며 24시간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경로당 막내이자 대표인 황문자(74) 할머니는 “여럿이 함께 밥을 지어 먹고 같이 운동하며 잠을 자니까 외로움도 사라지고 서로 친해져서 좋아요. 이것이 사는 재미지요”라며 함빡 웃었다.
노년을 홀로 쓸쓸하게 보내는 독거 노인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김제시는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농촌 노인 공동숙식제도인 ‘그룹 홈(Group Home)-한울타리 행복의 집’을 황산면과 청하면 2곳에 지정, 시범운영하고 있다.
시는 기존 경로당에 숙박시설과 운동기구, 목욕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난방비를 지원하고 무료로 한글과 댄스를 가르치고 있다. 식사는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부담하지만 마을 주민들도 가을 수확기는 물론 평소 쌀과 김치 등을 가지고 와 어른들을 대접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농촌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그룹 홈제도가 인기를 끌자 이 마을로 이주를 문의하는 전화도 잇따르고 있다.
김순이 황산면장은 “부모에게 문안전화를 하다 받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에 이웃이나 이장에게 확인하던 객지 자녀들이 이 제도에 제일 만족해 하고 있다”면서 “노인들은 덜 외롭고 자녀들은 안심하기 때문에 올해는 19개 읍ㆍ면ㆍ동에 2곳씩 모두 38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경로당에서 생활하는 이규선씨도 “잠자리와 먹을 것, 소일거리 등이 모두 갖춰져 있고 여러 분들이 함께 지내니까 떨어져 사는 자식으로서 걱정을 크게 덜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가 독거노인을 위해 적극 추진하는 사업은 e-복지센터 및 e-응급구호시스템 구축이다. 시는 소방서와 경찰서와 연계, e-복지센터를 구축하고 거동불능 독거노인들에게 팔찌나 목걸이 형태의 단말기를 지급해 위급할 때 응급상황을 복지센터에 전달, 신속한 구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올해는 대상자를 파악하고 한두 지역을 선정해 시범 운영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김제시는 약 10만명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2만명이 넘는 초고령사회다. 독거 노인은 6,079명에 달하며 경로당도 530여개나 된다. 이런 여건을 고려해 시는 노인종합복지타운을 확충하고 정부로부터 실버특구 지정을 받는 등 실버타운 메카로 조성할 계획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노인종합복지타운에는 복지관과 노인전용주택, 노인전문요양원, 야외공연장, 노인회관, 실내게이트장, 산책로, 배드민턴장, 일거리마련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시는 이 복지타운을 2015년까지 현재 2만평에서 22만평으로 확대, 이곳에 고령자 주거단지와 은퇴농장, 실버용품 전시장, 실버용품생산전문산업단지, 한방병원, 테마공원 등을 조성,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계획이다.
또 전통 미풍양속인 경로효친 의식을 되살려 윗사람을 공경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에도 나섰다. 우선 장수수당을 지급하고 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경로효친의식 고양과 전통예절교육,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 같은 김제시의 노인종합복지형 실버테마파크는 전북 순창과 전남 곡성, 충남 서천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니어콤플렉스의 모델이 되고 있다.
■ 이건식 김제시장“노인 고독死는 절대 없어야”
"또 하나의 가정인 '그룹 홈'을 통해 김제를 노인복지 천국과 실버산업의 메카로 만들겠습니다."
이건식(63) 전북 김제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하자마자 '그룹 홈' 아이디어를 내놓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 시장이 서둘러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4전5기로 시장에 당선된 그가 20여년 이상 선거운동을 하러 마을 구석구석을 수백 차례 돌며 노인들의 고충과 실상을 적나라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혼자 살다가 생을 마감해 며칠 후 이웃에게 발견되는 경우는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시장은 "노인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녀 교육을 시킨 희생세대이자 경제발전의 공로자들"이라며 "말벗이 없어 겪는 외로움과 끼니 걱정이 없도록 후세들이 여생을 편하게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새로 집을 지을 경우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지만 경로당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셈"이라며 "현재는 시 예산만으로 시범운영하고 있지만 대상을 확대할 경우 지방비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음달에 보건복지부를 방문, 정부의 예산지원을 요구하고 관계 공무원들도 초청해 견학시켜 이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를 바라고 있다.
김제=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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