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대의 정치적 실험은 지난 20세기에 이루어졌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등장과 소멸이 그것이다. 등장 과정에 레닌과 체 게바라 등 영웅신화가 탄생했고, 소멸 과정에 고르바초프와 옐친 등 정치인이 이름을 남겼다. 시간이 흐른 후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개의 이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사회주의 체제의 출몰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실험이었는지도 모른다.
▦ 보리스 옐친 초대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그의 역할은 소련에서 러시아공화국으로 넘어오던 1990년대 이후, 고르바초프와 푸틴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발탁해 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개혁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권좌에서 몰아내고 초대 러시아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실정을 거듭한 끝에 현재의 푸틴 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했다.
다행히 후임자 푸틴이 경제를 급성장시키는 덕분에, 그의 최대 업적은 푸틴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이 되었다. 옐친에 대한 이미지 역시 '민주 투사'로부터 '술 주정뱅이 대통령'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다.
▦ 소련을 민주사회로 이행시키고 동유럽의 민주개혁을 자극하여 세계질서에 변화를 가져온 최대의 주역은 고르바초프일 것이다. 그는 대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대외적으로는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하며 경제침체와 외교적 고립을 돌파했다.
1990년 공산당을 해체하여 공산통치사에 종막을 가져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옐친의 보다 급진적 개혁요구에 밀려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국가안보위원회(KGB) 첩보원 출신인 푸틴은 옐친의 사임으로 47세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그 후 대통령 선거와 재선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고, 러시아는 안정된 국가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다.
▦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실험을 끝마치는 데 중국은 소리가 적은 연착륙을 선택하고, 러시아는 시행착오의 소리가 요란한 경착륙을 시도한 듯하다.
러시아 시행착오의 주인공은 학자풍의 이상주의자 고르바초프, 민주 투사였고 낭만적이었으나 무능했던 옐친, 냉철한 현실주의자 푸틴 등 뚜렷한 개성의 인물들이다. 그들의 풍운아 같은 개성이 러시아 현대사를 한 편의 대하소설처럼 느끼게 만든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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