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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족, 행복사회-이제는 가족입니다] '폐교 위기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 전남 해남군 서정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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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가족, 행복사회-이제는 가족입니다] '폐교 위기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 전남 해남군 서정분교

입력
2007.04.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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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아빠가 하는 수업… 우리학교 자랑거리"

‘땅끝마을’을 발 아래 둔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자락에 폭 안기듯 자리잡은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는 수업이 끝나는 오후 2, 3시면 새로운 활기에 넘친다. 여느 학교 학생들이 집으로, 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시간에 서정분교 아이들은 새로운 수업 준비에 바쁘다. 학교 속 학교, 방과 후 특기적성 수업이다.

서정분교는 1~6학년을 통틀어 전교생이 50명에 불과하지만, 특기적성 수업은 영어, 중국어 교실에서 종이접기, 풍물, 독서지도, 과학실험, 생태체험 등까지 무려 15개 과목에 달한다. 도시의 유명 사립학교 부럽지 않은 다채롭고 알찬 수업이 모두 무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따로 돈을 들여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다.

19일 오후 5학년 교실에서 열린 중국어 수업시간. “이~얼~싼~스(하나 둘 셋 넷)”하는 중국어 박자에 맞춰 아이들은 갓 배운 중국 동요 ‘이를 닦아요’를 율동과 함께 신나게 부르고 있다. 같은 시각 컴퓨터실에서는 ‘한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아이들이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있고, 건너편 교실에서는 흙단소(흙으로 만든 단소) 배우기가 한창이다.

오후 4시 30분 특기적성 수업이 끝난 뒤 집으로 향하는 통학버스 안에서는 신나는 오락시간이 펼쳐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오락부장도 따로 없지만, 그날 배운 중국어, 영어 노래 솜씨도 뽐내고 최신 가요를 한 목소리로 합창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해남읍의 집까지는 40여분이 걸리지만, 아이들은 “신나게 노느라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품앗이로 일군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

조그만 시골 분교에서 이처럼 꽉 찬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학부모들의 ‘교육 품앗이’ 덕이다. 특기적성 수업의 대부분은 대학시절 전공이나 생업 노하우를 살린 학부모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다.

5학년 세란이의 아빠 양길수(41ㆍ식당 운영)씨는 광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진교실을 맡고 있다. 해남군청 홍보실에 근무하는, 5학년 효선이 엄마 정근순씨는 주말을 이용한 ‘해남 바로알기’ 현장체험 학습을, 4학년 혜원이 엄마이자 영어학습지 교사인 이경미씨는 영어학습을 책임진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혜원이 아빠 황찬율씨는 몇 년 째 만들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2학기부터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 한 켠에 여름이면 뙤약볕을 피하고 시원한 바람을 맛볼 수 있는 멋진 정자를 만들고 있다.

생태체험은 광주숲해설가협회의 도움을 얻어, 이름도 생소한 흙단소는 인근 학교의 음악 특기적성 전문 강사인 유연실씨를 초빙해 운영하고 있고, 교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첫 부임한 5학년 담임 임지현 교사는 “학부모들이 열성적으로 나서니 교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교대에 가기 전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경험을 살려 중국어 교실을 열게 됐다”면서 “아이들이 워낙 열심이고 다들 밝아서 피곤한 줄 모른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학부모회를 통해 특기적성 수업뿐 아니라 학교의 크고 작은 일들을 상의하고 해결하는데 앞장 선다. 이렇게 내남없이 50여명의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가진 것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전교생과 그 가족들은 한 울타리 안에 사는 대가족이 되었다. 아이들도 수업 시간에는 친구의 아빠, 엄마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학교 파하고 동네에서 만날 때면 ‘이모’ ‘삼촌’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른다.

“작은 학교라고 깔보지 마세요. 우리 학교에서는 왕따나 싸움 같은 게 전혀 없어요.” 학교 생활이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6학년 한호인양이 당당하게 대답하자 아이들은 “엄마, 아빠랑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체험학습도 즐기니 너무 좋다” “선생님이 삼촌이 되고 이모, 아저씨가 돼요”라며 자랑거리를 내놓기에 바빴다.

1시간 30분 거리인 영암에서 통학하는 4학년 임지영양은 “처음에는 거리도 멀고 낯설어 힘들었는데 수업 내용이 다양하고 재미있어 공부도 더 잘 된다”고 말했다.

●폐교 위기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

지금은 ‘작은 학교’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서정분교는 2003년 초 전교생이 5명으로 줄면서 폐교 대상에 올랐었다. 마을의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 폐교반대 운동을 시작했고, 이 소식을 접한 이경미(42), 김미옥(41), 김해숙(38)씨 등 읍내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가세하면서 해남 지역 전체의 학교살리기 운동으로 번졌다.

학부모들은 먼저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는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1주일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국내외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을 벌였다. 학부모들이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 자원봉사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였다.

해남읍내 학생,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주말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여름방학에는 해남생활협동조합 회원들과 함께 ‘작은 학교’에 관심을 가진 해남지역 학부모들을 초청해 가족캠프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작은 학교와 대안 교육에 대해 연구하는 학부모 모임도 생겼다. 가족캠프와 공부모임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하나 둘 서정분교로 전학시키면서 학교는 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됐다. 5명에 불과하던 학생이 2004년 20명, 2005년 37명, 2006년 56명으로 늘었고 현재 51명이 재학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각각 6명의 졸업생도 배출했다. 51명의 재학생 중 서정리 원주민의 자녀는 15명. 4명은 최근 서정리로 이주해온 가족의 자녀들이고, 32명은 해남읍과 영암군 삼호읍 등에서 통학하고 있다.

서정분교의 성공 사례가 입소문을 타면서 먼 도시에서 ‘유학’을 오기도 한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 서정분교에 전학을 왔던 한 학생은 1년 만에 말 더듬는 버릇도 고치고 성격도 밝아져 돌아간 예도 있다.

학부모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성재(43ㆍ의사)씨는 “경쟁과 성취만을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공동체의 가치와 그 속에서의 역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학업 성적도 자연히 올라간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해남 서정분교가 자신이 뿌리내리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돌봄과 나눔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참 좋은 사례”라며 “이 분교는 경쟁으로 가득 찬 우리나라 교실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활동적인 배움, 협동적인 배움, 표현적인 배움이 참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해남=박경우기자 gwpark@hk.co.kr

■ 서정분교 학부모회

“세란 아빠의 사진교실이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라면서요? 우리 애들이 집에 오면 세란 아빠 자랑만 해요.” “우리 세란이는 안솔이 아빠의 로봇 공학 수업이 제일이라고 하던데요.” “다음 주 은별이 생일이에요?” “예, 저희 집에 오세요.”

19일 낮 전남 해남군 해남읍의 식당에서 열린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학부모회의 임원 회의. 한 달에 한 번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의 진행을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을 짜는 자리이지만, 딱딱한 회의와는 거리가 멀다. 집안 대소사까지 챙겨주는 ‘사랑방 모임’이나 다름없다.

김미옥(41)씨는 “아이들 때문에 만나면 가족과 부부 문제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된다”면서 “부모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가족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연장자로 학부모회 전 회장이자 잉꼬부부로 소문 난 고금렬(51)씨 부부가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며 ‘어른’ 노릇을 한단다.

서정분교 학부모들도 여느 대한민국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 그러나 그 앞에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붙는다. 이들은 “교사와 학생이 하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자신감 있고 남을 배려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들은 낡은 재래식 화장실을 바꾸고, 2㎞나 떨어진 미황사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작은 급식시설을 만들어주었다. 해남읍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서화전과 바자회를 열어 통학버스를 구입하고 운영비를 마련한 것도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었다.

서정분교는 학부모들의 열성으로 간신히 폐교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작은 학교’에 대한 편견과 교육당국의 무관심 탓에 아직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3년 전에는 독지가가 통학버스를 기증했는데 교육청이 “운영비를 댈 수 없다”며 거절해 깊은 상처를 주었다. 김미옥씨는 “서정분교는 거창한 대안학교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가꿔가는 보통 학교”라면서 “그저 아이들을 아름답게 키우겠다는 소망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남=박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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