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난감 스트레스 장난 아니죠"
“어린이 장난감도서관이나 교환소가 많아져 집 근처에서 손쉽게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는 장난감을 고쳐주는 병원도 흔하다고 하던데요.”
육아휴직 중인 초등학교 교사 이윤주(34ㆍ인천 계양구 효성동)씨는 장난감에 쉽게 싫증을 내는 아들 정윤(3)이를 달래느라 애를 먹는다. 얼마 전에는 1만5,000원을 주고 ‘슈퍼마켓 놀이’ 세트를 사주었는데 사흘 만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씨는 인형, 공구세트 등 아파트 베란다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채 쌓여있는 장난감 더미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렇다고 싫증날 때마다 새 것을 사주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잠깐 놀다 버리는 장난감도 가격은 만만치 않다. 정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기차마을’ 세트는 원목으로 된 기차, 레일, 터널 등을 모두 갖추는 데 150만원이 들었다. 이씨의 오빠가 큰 맘 먹고 사주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장난감이다.
대여업체를 이용하는 것도 수월치 않다. 인터넷 화면에서 아이가 고른 플라스틱 모형 자동차는 얼룩이 묻어있고 부서진 부분도 있었지만 일주일 빌리는 데 무려 3만원이나 됐다. 가입비 2만원은 따로 냈다. 아이가 웬일인지 더 가지고 놀겠다고 떼를 썼지만 기간을 연장하면 돈을 더 내야 해 그냥 반납했다.
궁여지책으로 정윤이 또래 아이를 둔 중학교 동창 2명과 장난감을 교환해서 쓰기로 했다. 친구들도 “처치 곤란한 물건이 많다”고 의기투합했고, 장난감뿐 아니라 책이나 옷가지 등도 알뜰하게 나눴다. 하지만 세 엄마의 교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1만원 안팎의 연회비로 몇 달 이상 빌릴 수 있는 장난감도서관, 다 쓴 장난감을 기증하면 가격을 매긴 뒤 ‘쿠폰’을 줘 다른 장난감과 바꾸게 하는 쿠폰제 장난감 교환소, 망가진 장난감을 고쳐주는 장난감 병원…. “아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깨끗하고 값싼 장난감을 구할 방법은 없을까요.”24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장난감 관련 제안을 한 이씨의 작은 소망이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 日 장난감병원 400곳… 은퇴자 자원봉사가 주축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지구집’이라는 과자점을 운영하는 가토 시게오(加藤茂夫)씨는 다음달 27일 지역 방송인 CBC에 나간다. 과자가 예쁘고 맛있어서가 아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난감병원’의 의사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장난감도서관은 장난감 교환이나 대여를 통해 놀이문화를 만들어 가는 경향이 강하지만 일본은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주고, 중고 장난감의 가치를 매겨 교환을 도와주는 장난감병원이 활성화돼 있다. 장난감병원연락협의회에 소속된 병원만도 도쿄(東京) 77곳 등 전국에 400곳이 넘는다.
장난감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공동체와 밀착돼 자원봉사자나 은퇴 노인들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장난감의사 양성 강좌도 적지 않다. 교육을 마친 장난감 의사들은 자신의 집이나 가게, 시민회관 등에 병원을 차려 아이들과 만난다.
노인들과 아이들이 모두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윈윈’ 사업이라는 점에서 일본 언론들은 장난감 의사를 ‘제2의 인생’을 꾸며가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장난감병원연락협의회는 “아이들은 흔히 장난감을 사서 쓰다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장난감 등 물건을 경시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이경진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년)
■ 장난감도서관 전국 27곳뿐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셔버리는/ 다음 날에는 벌써 그것을 준 사람조차 잊고 마는 아이들같이…’(헤르만 헤세 ‘아름다운 사람’중)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장난감도 환호는 잠시뿐이다. 아이들은 한동안 갖고 놀다 싫증 내며 새 장난감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만~수십만원 하는 가격을 생각하면 “그게 아이들이고, 장난감의 숙명이지”따위의 한가한 소리를 할 겨를이 없다. 부모들은 “바라는 대로 다 사 줄 수도 없고, 가끔씩 사 줄 때에도 이래저래 머리가 아픈 게 사실”이라고 입을 모아 하소연한다. 한국일보와 희망제작소가 대안을 알아봤다.
24일 찾은 서울 중구 녹색장난감도서관에서는 장난감을 고르는 어머니와 아이들의 웃음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2001년 12월 문을 연 녹색장난감도서관은 서울시 보육정보센터가 운영한다.
1년에 5,000원을 내면 한 번에 2점씩 열흘 간 빌릴 수 있다. 장난감을 깨끗하게 제 때 돌려주면 1회 3점씩 2주일간 대여할 수 있는 정회원이 된다. 규정을 지키는 서울 시민이면 횟수에 제한 없이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이곳에는 하루 평균 80여명이 들러 인형과 블록 등 장난감 4,000여점 사이를 즐겁게 오간다.
장난감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오래된 제도는 장난감도서관 운동이다. 1963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레코텍(lekotek)이 결성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약 60여개국이 세계 장난감도서관협회(ITLA)에 가입해 있다.
레코텍은 스웨덴어로 놀이(lek)와 도서관(tek)을 합친 말로 우리나라에는 1982년 9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 성베드로학교에 처음 도입됐다. 지금은 서울 13곳 등 전국 27곳의 장난감 도서관이 있다.
문제는 ‘대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장난감 재활용’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교환(쿠폰제) 기능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녹색장난감도서관도 ‘헌 장난감을 새 장난감으로 교환합니다’고 알리고 있지만 실제 교환 요청은 1달에 2건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곳에서도 장난감 교환 행사를 열고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신정희 한국장난감도서관협회 회장은 “협회에 가입한 장난감도서관 중 아직 교환 프로그램이 일반화한 곳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는 장난감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할 인력이 부족해 일대일 물물교환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윤주씨가 제안한 ‘쿠폰제’교환제는 아직은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
장난감도서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장난감을 고치고 중고 장난감에 적절한 가격을 매겨주는 ‘장난감 의사’나‘장난감 병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난감 업체들도 동참해 소규모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쿠폰제 교환이나 장난감 병원이 운영된다면 훨씬 더 저렴하게 다양한 장난감을 이용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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