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 여백'길 위의 큰 스님' 鏡虛의 일대기
<‘마음달 홀로 둥글어/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 빛과 경계 다 공한데/ 또다시 이 무엇인가(心月孤圓 光呑萬象 光境俱忘 復是何物)’ 글씨를 쓰고 난 경허는 홀연히 붓을 던져 버린다. 이로써 이 4행 게송이 경허가 남긴 열반송이 되었음이다.>
소설가 최인호(62)는 <길 없는 길> 에서 경허(鏡虛ㆍ1849~1912) 스님의 입적을 이렇게 쓰고 있다. 1912년 4월 25일 새벽이었다. 길>
경허는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中興祖)로 불리는 대선사다. 꺼져가던 조선 불교의 불씨를 되살려 한암(漢岩), 만공(滿空), 수월(水月), 혜월(慧月) 등의 선사들에게 이어지게 한 고승이다.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한 손에 칼을 쥐고 송곳을 턱 밑에 받쳐놓은 면벽수행, 원효 스님의 파계 이래 최대의 만행으로까지 불린 기행들, 만년에는 사찰을 떠나 북방의 갑산에서 서당을 열고 접장으로 삶을 마치기까지, 그의 구도행은 산중에서 홀로 깨닫는 선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실천하는 선이었고 그래서 그는 ‘길 위의 큰 스님’이었다.
<길 없는 길> 은 소설로 쓴 경허 스님 일대기다. 해직교수인 주인공 강빈이 경허의 자취를 찾아가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줄거리에, 경허의 삶과 함께 불교 선가의 화두와 근대 우리 고승들의 일화를 엮은 구도소설이다. 길>
최인호의 솜씨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는 “경허의 선시 중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는 구절에 한 방망이 두들겨 맞고 불교의 우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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