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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현장에 가다/ <上> 미국인 옷엔 한국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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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현장에 가다/ <上> 미국인 옷엔 한국산이 없다

입력
2007.04.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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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다운타운에 위치한 캐주얼 의류 ‘바나나 리퍼블릭’매장. 우리나라 업체인 신원에서 일부 물량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제작, 공급하는 의류 브랜드다.

그러나 3개층 매장에 진열된 옷의 원산지표시를 아무리 뒤져 봐도 ‘메이드인코리아’를 찾을 수가 없다. ‘메이드인차이나’나 ‘메이드인베트남’만 눈에 띈다.

신원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옷은 99%가 국내가 아닌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 관계자는 “섬유가 한미 FTA의 가장 큰 수혜 업종이란 말은 물정 모르는 소리”라며 “대부분의 섬유ㆍ의류 업체들이 이미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지 오랜데 무슨 한미 FTA 효과가 기대되겠느냐”고 밝혔다.

#2.

22일 미 LA의 세계적 명품쇼핑가인 로데오거리. 이곳 중심부에 자리잡은 고릅 의류 ‘브룩스브라더스’ 제품의 상당량은 2년전만 해도 우리나라 중소 업체들이 OEM으로 수출했다.

그러나 지금 이 전시장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 것. 본사 구조조정 등이 진행되며 원가절감 차원에서 한국 주문량이 모두 중국으로 바뀐 결과이다.

브룩스브라더스의 한국 구매사무소(바잉오피스)인 선익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중국산이 판을 치며 한국에 의류 산업 기반이 아직 남아 있느냐고 묻는 바이어도 있을 정도”라며 “시장에서 메이드인코리아가 종적을 감췄는데 어떤 바이어가 한국산 의류에 대해 관심을 갖겠느냐”고 지적했다.

섬유와 의류는 한미 FTA 협상 타결로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알려진 업종. 하지만 ‘잭팟’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부분 업체들이 이미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한 터라 한미FTA가 시행된다 해도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미국으로 6억7,000만달러어치의 의류를 수출, 우리나라 의류 업체 가운데 미국 수출량 1위를 기록한 세아상역은 사실 국내에는 어떤 생산 시설조차 갖고 있지 않다.

고임금의 국내생산으론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어 과테말라 니카라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해외 19개 공장에서 의류를 생산,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세아상역의 옷은 월마트 K마트 시어스 타겟 콜스 등의 미국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되고 있지만, 회사 관계자는 “한미 FTA에 대해 별 다른 감흥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류 업체 가운데 미국 수출량이 두번째로 많은 한세실업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4억4,000만달러를 기록한 미국 수출량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것. 갭 나이키 올드네이비 등이 한세실업에서 공급하는 의류 브랜드이지만 ‘메이드인코리아’는 없다.

물론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섬유ㆍ의류 업체들은 한미 FTA의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 규모는 턱 없이 작다.

실제로 국내에서 생산, 미국으로 수출하는 의류 업체 가운데 가장 큰 최신물산의 지난해 미국 수출액은 5,500만달러에 그쳤다. 전량을 해외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의류업체 중 1위 기업인 세아상역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최고 32.5%의 관세 철폐를 골자로 한 섬유ㆍ의류부문 한미 FTA가 기회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관세가 당장 철폐된다 해도 중국산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미국 섬유수입시장 점유율은 1995년 5.2%에서 2005년에는 2.4%까지 추락한 상태. 반면 중국산은 같은 기간 12.6%에서 24.2%로 확대됐다.

특히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의 미국 섬유 수입시장 점유율도 95년 7.5%였다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효과가 나오면서 2000년엔 13.7%까지 커졌으나 2005년에는 오히려 중국산에 밀리면서 다시 8.6%로 떨어졌다.

근거 없는 낙관론에 의지하기 보단 철저한 준비를 통해서 한미 FTA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박 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FTA를 활용, 다품종 소량 생산 및 차별화한 제품으로 국내 섬유ㆍ의류사업의 고도화를 촉진시켜야만 한다”고 밝혔다.

LAㆍ산타모니카=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현지 바이어들의 충고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LA시 중심가 캘리포니아마켓센터에서 열린 LA국제섬유쇼. LA섬유협회(TALA)가 주최하는 미 서부지역 최대 섬유 관련 전시회로 주로 그 이듬해에 유행할 의류용 원단이 선 보이는 자리다.

이번 행사에도 전 세계에서 3,000여명의 원단 생산자와 의류 업계 관계자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2007 LA국제섬유쇼의 최대 관심은 내년에 유행할 컬러에 대한 것. 이와 함께 한미 FTA로 한국산 원단이 다시 경쟁력을 갖게 될 지도 참석자들에겐 궁금사항이었다.

실제로 두리와 부영 등의 우리나라 섬유 업체 전시관엔 행사기간 내내 바이어 문의가 잇따랐다.

그러나 LA섬유협회 관계자와 현지 바이어는 한국 업체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브라이언 탈러 LA섬유협회장은 “바이어가 원단을 결정하거나 대형 유통업체들이 의류 생산업자들을 선택할 때는 가격과 품질, 그리고 서비스를 가장 중시한다”며 “바이어가 원하는 가격과 품질의 제품을 바이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어김없이 제공할 수 있어야만 거래가 지속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물수입상인 네만 브라더스의 요엘 네만 사장도 “2000년대만해도 총 수입량의 60%가 한국산이었지만 지금은 10%미만”이라며 “한국은 저가의 중국산과 경쟁하지 말고 이탈리아의 고급 직물과 경쟁하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류 수입상인 레베카 베이컨 사장 역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뒤 관세 인하 등을 염두에 두고 캐나다 원단 생산업자에게 주문을 냈지만 물류에 문제가 생겨서 원하는 때 물건을 받지 못해 큰 손해를 본 적이 있다”며 “한미 FTA로 바이어 주문이 늘 것에 대비 물류 시스템을 점검하고 어떤 상황 하에서도 정확한 시간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니트 품질 우수 차별화 전략이 필요"

"한미FTA 체결로 한국 섬유 기업들이 미국시장에 무조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미국 뉴욕의 섬유수입 업체인 '서던 인스피랙션스(Southern Inspiracions)' 앨빈 시퍼사드 사장은 기자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미 FTA 체결을 이유로 한국 기업이 미국시장에 올인해서는 안된다"며 지나친 기대감은 버려야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계란 바구니를 예를 들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한곳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올바른 투자 방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섬유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이탈리아를 비롯 프랑스, 일본 등 섬유산업 선진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신흥 국가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한국의 FTA체결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 섬유 시장에서 FTA체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섬유 분야에서 니트부문이 한국의 최대 장점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품질력이 우수한 한국산 니트가 가격 경쟁력 까지 갖추게 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시퍼사드 사장은 "중국 섬유 산업의 가격 경쟁력으로 인해 한국과 거래를 끊었지만 한미 FTA체결이 된 만큼 비즈니스 재개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제품이 관세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산 보다 30% 더 저렴해 거래를 중단했던 것"이라며 "FTA 체결에 따른 인과 관계를 파악해 섬유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LA=박일근 기자 ikpark@hk.co.kr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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