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아니다. 16~2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5회 세계과학기자컨퍼런스’의 한 토론내용이다. 현재 호주는 불임시술에서 남은 배아를 이용한 수정란 줄기세포 연구만 할 수 있다.
그러나 빅토리아주를 비롯, 퀸즈랜드주, 사우스 웨일즈주 의회가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법안을 놓고 투표에 붙이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호주 모나시대학의 멜튼 교수 등이 줄기세포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줄기세포가 호주 과학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세계 50개국의 과학·의학 기자 500여명이 참여한 세계과학기자컨퍼런스는 이처럼 세계 각국의 과학보도 관심사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줄기세포 연구 등 과학보도가 과장된 것은 아닌지, 동시에 정치 스포츠 연예 기사와 경쟁하면서 과학기사를 어떻게 보다 많이 보도되게 할 것인가, ‘과학 부정(不正)’에 대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이다.
19일 ‘줄기세포와 생명윤리’라는 토론 세션에서 “배아줄기 세포가 모든 질병을 다 고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그저 기사로서만 매력있는 게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당장 성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일단 연구는 시작하고 봐야 한다”는 연구자의 답은 국내에서 벌어진 논쟁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종교계의 반대는 우리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말콤 워셔 호주 연방 의원은 “가톨릭 병원도 많고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는 호주와 유럽에서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매우 어렵다”며 줄기세포 연구에 적극적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제프 카 과학 편집장은 “한국의 경우에 대해 알고 싶다”며 거꾸로 방청석에 있는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한국에서는 종교적 반대보다 난자 매매의 부작용이 큰 이슈”라는 설명에 청중들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상 줄기세포 연구는 가장 과장과 자극이 심한 과학보도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40년간 과학방송인이자 저술가로 활동해 온 롭 모리슨 호주 플린더스대 교수는 17일 ‘과학기자 윤리강령’이라는 세션에서 이를 분석한 사례를 제시했다.
과학·의학 연구성과가 소개되는 웹사이트인 유레카얼러트(www.eurekalert.org)에서 줄기세포 연구 관련 보도자료 5,229개를 분석한 결과 이중 2,206개가 ‘돌파구’라는 용어를 제목에 달았고, ‘최첨단’이 1,127개, ‘중요한 단초’가 982개에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과학 잡지인 ‘시드’의 크리스 무니 기자는 미국에서 줄기세포 연구 논쟁은 전형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오용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17일 ‘과학 지식의 편향’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존 에드워드가 2004년 “크리스토퍼 리브가 일어나길 바란다면 민주당을 뽑아라”는 요지의 선전을 한 것을 언급하며, “정치인들이 때로는 과학에 대해 전혀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하는가 하면 때로는 과학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슈퍼맨 주인공이 리브는 1995년 5월 말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된 뒤 2004년 10월 사망했다.
17일 ‘과학 부정에 대한 탐사’ 순서에서도 한국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태는 주요 관심사로 다뤄졌다.
황우석 사태 당시 한국 언론들이 황 박사에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보도를 한 내용에 대한 주제발표를 들은 뒤 필립 캠벨 네이처 편집장은 “연구원 난자 기증의 문제를 지적한 기사를 네이처가 처음 보도했을 때 한국 언론들의 반응은 네이처가 시기해서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냈다는 것이었고, 이 때 한국의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 부정은 과학자의 문제지만 학술지도 과학 부정을 막는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호주에서 부정사건을 제보한 적이 있는 필 바디 박사는 “부정을 제보하려 할 경우 증거를 잘 보관해야 하고, 중요한 점에만 집중하며, 연구자가 속한 기관도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는 점에 주의하라”고 제보자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밖에 컨퍼런스에서는 기후변화와 물부족 등 호주에서 관심 있는 주제가 다뤄졌다. 세계과학기자컨퍼런스는 세계과학기자연맹이 2년마다 주최하는 행사로 6회 컨퍼런스는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멜버른=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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