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고상하고 선비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유로운 창작을 구속하고 있습니다. 등단 작가가 3,000명에 달하는 수필이 정작 독자들에겐 외면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필동인 양재회 강호형(69) 회장은 수필계 전반에 만연한 ‘선비 의식’을 비판한다. ‘수필은 청자 연적을 닮은 문학’(피천득), ‘간밤에 마시다가 흘린 주흔(酒痕ㆍ술이 묻은 자국)’(윤오영) 등 수필의 고고함을 강조하는 전통에 얽매이다 보니 변화하는 현실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강씨가 양재회 동인 9명과 함께 창간한 무크지 <수필실험> 은 “치열한 현실 인식과 실험 정신”으로 수필의 미래를 모색하겠다는 출사표다. 강씨는 “수필은 휴전선에 나뒹구는 녹슨 철모이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전동차에 뛰어든 가장의 혈흔이기도 해야 한다”는 패러디로 <수필실험> 의 지향을 표현했다. 수필실험> 수필실험>
_수필잡지가 20여 종에 이르는 상황인데 또 잡지여서 되겠는가.
“동인들이 추천 등단시켜 동인 수를 늘리고 그들의 글로 지면을 채우는, 기존의 폐쇄적 수필잡지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려 한다. 새로운 형식미를 추구하는 글이라면 작가의 등단 여부와 관계 없이 실을 계획이다. 집필 방향을 제시하는 등의 간섭도 일체 하지 않을 것이다.”
_책 앞머리에 ‘사투리 수필’ 코너를 배치했다.
“창간호라 특별히 지역 출신 작가들에게 청탁했다. 경상, 전라, 충청, 제주, 강원을 망라했다. 외래어나 인터넷어 남발로 고유어가 빈곤해지는 상황이다. 좋은 뜻, 아름다운 음운을 지닌 사투리라면 자주 사용해 표준어 편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_원고지 2~4매 분량의 ‘짧은 수필’과 형식의 파격이 인상적인 ‘내일의 수필’ 코너도 눈에 띈다.
“전자는 좀처럼 독서 시간을 낼 수 없는 현대인들을 위한 실험이다. 적은 분량으로 독자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으려는 시도다. 후자는 동인들의 지향과 가장 어울리는 부문이다.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우화 등 다양한 소설 형식을 차용한 작품을 실었다.”
_전문 수필가가 아닌 문인들의 수필이 도리어 인기를 끌곤 한다.
“수필은 열린 문학이다. 수필가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글만 좋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작품 완성도와 무관하게 매스컴을 통해 얻은 지명도를 바탕으로 인기를 얻는 경우는 문제다. 장기적으로 수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강 씨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문예창작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마다 창간호를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음 호는 9월쯤에 나올 예정이다. 동인 활동과 별개로 강씨는 수필과문학사 의뢰로 ‘현대 수필 100인선’(가제) 발간을 위한 작가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김태길, 차주환, 장돈식 등 우리 시대 대표 수필가들의 작품을 문고판 형식으로 출간, 수필 독자의 저변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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