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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토플 대란'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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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토플 대란'이 우습다

입력
2007.04.2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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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터넷에서 '토플 대란'이라고 난리다. 유례없이 신속히 10일만에 정부가 나서고 고교 교장들이 뭉쳤다. 범국가적으로 '토플 불매운동'의 조짐이 보이자 미국 본사(ETS) 수석부사장이 황망히 내한해 서비스 개선(?)을 약속했다.

이번 혼란의 본질은 잘 알다시피 우리의 잘못된 영어교육의 단면으로, 초중등 학생들의 과수요 때문이다. 유행 상품의 수요ㆍ공급 부작용일 뿐이다. 학생의 '결식 대란'이나 '알바 대란'에는 그렇게도 무심하던 대한민국이 '토플 대란'으로 국제적 망신을 샀으니, 웃기는 나라가 돼버렸다.

■ 주연은 단연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연간 10만여 명의 응시자 중 30~40%가 미국대학 입학과 무관한 초중등생이며, 이들의 목적은 외고 입시 때문이라 한다. 서울 지역 7개 외고에서 영어특기 형태로 선발하는 인원은 200명 이내며, 토플은 대부분 외고에서 토익 텝스와 함께 선택 사항이다.

굳이 ETS 토플로 점수를 따겠다면 밤을 새우든, 광클을 하든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담이다. ETS가 '한국을 우습게 여겨'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기적인 핑계에 불과하다. 응시료만 매년 100억원 넘게 내는 한국은 ETS의 제일 소중한 고객이다.

■ 정부도 웃기는 데 동참하고 있다. 1964년 토플시험이 시작된 후 미국 유학생이 10만 명에 이를 때까지 한번도 문제를 검토하지 않다가, 수요 과잉이 일자 '외고에서 토플을 없애라'고 수요 차단을 종용했다.

일본이 1963년부터(STEP TEST), 중국은 1987년부터(CET) 국가시험을 개발해 연간 수백만 명의 수요를 해결하고 있다. 이번 문제를 외고 합격자 몇 백 명으로 해결하려 드니 교육부의 현실감이 우습지 않을 수 없다. 덩달아 공정위가 ETS의 부당거래를 조사한다는 것도 그렇다. 굳이 말한다면 '부당 수요' 정도가 아니겠는가.

■ 외고 교장들이 2009학년도부터 입시에서 토플을 뺄 테니 초중등생들은 앞으로 시험에 응하지 말라고 유인하는 것도 코미디다. 고교등급제 논쟁의 원인이 될 정도로 괜찮은 학교의 교장들이 이러한 결정을 했다니 우습지 않을 수 없다.

심하게 비꼬면 미국 ETS회사의 컴퓨터가 다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년간 유지해온 자신의 입시 전형제도를 변경하겠다는 게 아닌가. 학생들이 다시 토익과 텝스 등으로 몰려 그 인터넷이 다운되고 그 고사장이 터져나가면 또 어찌할 것인가. 대증처방에만 급급하지 말고 차분히 대책을 궁리하자.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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