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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이후 50대에 투잡… 그의 마르지 않는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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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이후 50대에 투잡… 그의 마르지 않는 '이력서'

입력
2007.04.2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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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사이에서 투잡이 인기다. 투잡은 안갯속 같은 현실을 사는 사오정(45살이면 정년) 예비생들에겐 유일한 탈출구일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잡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일까. 아마도 99%는 맞는 말일 터. 하지만 1%의 예외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민안식씨. 그는 52세의 퇴직자다.

하지만 그의 이력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세무사인 동시에 퓨전주점(섬마을 이야기ㆍwww.seommaul.com) 사장님이다.

하나만도 벅찰 나이에 젊은이 못지 않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현직에 있을 때 보다 퇴직이후가 더 바쁘다”고 얘기하는 민안식씨. 그가 얘기하는 50대 퇴직자의 투잡 생활을 살펴본다.

질릴 정도로 따져 봐라.

그는 잘 나가는 세무사다. 2003년 국세청 공무원을 그만두고 강남에 세무사 사무실을 내자마자 밀려드는 손님들로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였다.

최소한 개업이후 3개월은 적자를 금치 못한다는 게 업계 상식이었지만, 그에게 만큼은 예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국세청 법무과 재직 시절 담당 소송에서 이긴 비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베테랑이었다.

재직 중에 3년을 악착같이 공부해,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는 ‘악바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퇴직이후 부업을 한다고 하자 다들 “늘그막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돈독이 올랐냐”며 걱정어린 충고들을 쏟아 냈다.

그가 부업에 나선 계기는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부인이 적적함과 허탈감을 덜기 위해 일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3년 동안 자신을 대신해 가정을 챙겼던 부인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게다가 대학생인 첫째와 둘째, 중학생인 셋째의 학비 충당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섰다.

하지만 부인은 사회경험이 없는 전업주부. 그 역시 20여년동안 국가의 녹만 먹은 공무원이었다. 모두 창업에는 문외한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창업 아이템은 가장 무난한 호프집으로 정했다. 손수 차릴 수는 없어 프랜차이즈 호프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직장주변부터 시작해 웬만한 곳은 샅샅이 뒤졌지만 입지나 수익 등을 감안할 때 썩 맘에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 호프집을 들렀다가 주인으로부터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저 집이 차고 나면 우리집으로 손님들이 와요” 주인이 가리킨 곳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해산물 전문 퓨전 주점.

냅다 달려가서 건물 관리인에게 임대료는 밀리지 않는지, 수익이 좋은지를 넌지시 물어 본 뒤 가게 성격이나 회전률도 살펴봤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세무사 업무를 마치고는 부인과 함께 서울에 있는 가맹점 22곳을 모두 찾아 다니면서 입지와 유동인구, 회전률을 꼼꼼히 챙겼다.

밤을 하얗게 지새는 것도 다반사였다. 이렇게 하다 보니 가게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입지는 상권이 몰려있는 번화가가 아니라 단독주택과 아파트단지, 상가가 적절하게 배합된 지역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번화가는 임대료도 비싸고, 남녀노소가 두루 즐길 수 있는 가게 성격과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가게자리를 찾기 위해 또다시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혼생활을 했던 약수역 인근 점포를 찾았다. 하지만 입지선정은 기나긴 행군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그와 부인은 한달 동안 다른 점포에서 설거지부터 청소까지 온갖 잡일을 하며 실전경험을 쌓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스스로 질릴 정도로 따져 보고 준비를 했다. “퇴직자들은 창업에 문외환이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업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입지와 아이템 등을 꼼꼼히 따져 봐야 실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사의 목적은 축재가 아니라 손님만족

만반의 준비가 다 된 지난해 12월, 가게 문이 열리자 손님들은 미어 터질 지경이었다. 하루 매출만 300만원에 달했다. 비록 3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지만 아깝지 않은 결과였다.

세무사 수익보다 더 짭짤하다 보니 이제는 부업이 전업이 됐다. 하지만 그는 “돈보다는 손님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친척, 친구 등 지인들에게 개업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5개월이 지났지만 아는 친구들은 손에 꼽는다. 더군다나 개업 초기에는 지인들이 가게에 되도록 오지 않도록 했다.

친지와 가족들을 동원하는 보험설계사보다,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가는 보험설계사가 성공하는 이치와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손쉽게 돈을 버는 것보단 정공법을 선택한 것이다.

대신 지역 주민들에게 깍듯이 대했다. 초저녁에 발길이 잦은 동네 노인들에겐 아들처럼, 장년 층에겐 친구처럼, 젊은이들에겐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다가갔다. 음식도 아끼지 않고 푸짐하게 내놨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성공요건은 음식 맛. 하지만 그나 부인이나 메뉴가 대부분 생소한데다 요리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주방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다만 그는 주방장에게 본사에서 제공한 요리법에 최대한 충실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전문가들이 수년동안 연구한 메뉴와 맛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창업이후에도 매월 본사에서 가맹점 점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게 운영 노하우도 쌓아 가고 있다.

“주변에서 요리솜씨를 뽐내다 국적불명의 음식을 만들어내거나, 질 떨어지는 값싼 재료를 쓰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건 제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꼴이죠. 음식장사에도 원칙을 지켜야지 잔꾀를 쓰면 손님들이 금방 외면하죠.”

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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