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대사님이 소개하는 부인은 진짜 부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새로 사귄 여자이고, 진짜 부인은 본국에 있어요. 우리는 대사님의 정부(情婦)를 절대 부인으로 인정하지 맙시다."
유럽에서 온 한 대사부인이 다른 대사 부인들에게 은밀하게 말했다. 자신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표정으로.
문제의 대사 부인은 외교통상부가 발행하는 주한외교관 명단에 해당 대사의 부인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 대사는 부부동반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자신의 정부(情婦)를 부인으로 소개하고 다녔다.
상황이 이쯤 되면 대부분의 대사 부인들은 그녀를 간접적으로 따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사실 외교사절을 초청할 때 주최측은 통상 대사와 배우자를 함께 초청한다.우리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대사가 법적인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데려가도 주최측은 문제를 삼지 않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외교가에선 암묵적으로 용인되기도 한다.
문제는 공식 외교 의전상 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각국의 외교부는 외교사절이 대동하는 배우자나 애인을 '파트너' 문제라고 하고 의전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나름의 규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교사절단을 정부 주최의 공식 행사에 초청할 때 대상자는 대사와 그의 법적인 배우자에 한정한다. 대통령 주최 주한 외교사절단 만찬 초청장에는 배우자의 조건이 엄격하게 명시되어 있다. 정부 주최가 아닌, 예컨대 외국 대사관 주최 행사에는 대사가 누굴 데려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최근 일부 국가에서 동성(同性) 배우자를 법적으로 인정하면서 외교가에서도 동성 문제가 생길 전망이다. 파트너 문제는 이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간다고 하더라도 동성 파트너는 아직 생소하다.
주한 외교사절 중 공개적으로 동성애를 밝힌 사람은 아직 없으나 앞으로 그 가능성을 완전해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는 대사의 동성 배우자에 대한 의전 연구도 필요하다.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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