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음으로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를 자세히 전한 나라는 중국일 것이다. 참사 직후 미국 시카고 선 타임스 등에서 중국인이 사건 용의자라는 오보가 나왔던 탓이 크다.
● 용의자 오보에 미중관계 걱정
이 오보에 중국인들은 크게 놀랐다. 가뜩이나 껄끄러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시카고 선 타임스에 대한 논평을 요구 받자 "중국 인민과 정부는 사상자와 가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밝히면서 당황한 빛을 보였다. 이후 범인이 조승희씨로 밝혀지자 중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오보를 힐난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이런 반응들이 뭔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차이나 데일리의 칼럼니스트 레이먼드 저우는 일부 미국 언론이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오보를 내고, 범인이 중국이 아니라는 데 안도하는 중국인의 반응은 비이성적 사고의 표본이라고 주장을 폈다.
그는 범인이 중국인이면 중국인 모두가 죄인이라도 된 듯한 심정을 갖고, 범인이 중국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을 때 "우리 중국인이 그럴 일을 낼 리 없어"라고 반응했던 정서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는 1991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을 살해한 중국계 학생 루강 사건 등을 사례로 언급하면서 한 정파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저지른 살인이 아닐 경우 살인은 범인의 국적과 인종을 결코 대표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범인의 행위는 당연히 국적과 인종과 분리돼 바라봐야 하고 개인 행위 차원으로 국한해 사건을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범인을 섣불리 자기 또는 자기 나라와 동일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AP통신은 21일 "동정과 부끄러움에 가득한 한국"이라는 서울 발 기사를 통해 어느 민족보다 집단의식이 강한 한국에서 이번 사건을 한국의 일로 여기고 외부 세계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볼지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이 한국계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에 한국인들이 열광했던 일과 이번 사건을 포개서 조명한 대목은 우리가 새길 만한 부분이다.
미국은 이미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버지니아 공대 학생회는 한국대사관에 보낸 이메일에서 "한 사람의 행동이 우리 학생들과 한국민 간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살인자는 국적ㆍ인종과 무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한국인으로 드러난 후 우리가 보인 복잡한 정서는 피붙이를 중시하는 우리의 집단의식을 충분히 반영했다. 이런 모습은 뭐라 꼬집어 형언하기 어려운 한국의 저력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치유할 몫을 미국이 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할 일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라' 비슷한 '솥뚜껑'을 보고 놀란 중국 칼럼니스트의 주장이 정말 크게 놀란 우리에게 약간은 도움이 될 성 싶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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