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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남한산성… 1636년 겨울, 참담했던 역사의 장관 4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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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남한산성… 1636년 겨울, 참담했던 역사의 장관 47일

입력
2007.04.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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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지음 / 학고재 발행ㆍ384쪽ㆍ1만1,000원

“김상헌이 들보에 목을 매었다. 버선발이 공중에 떴다. 매달려서 버둥거리는 그림자가 창호지에 비쳤다.”(343쪽)

마침내 항복하는 왕을 보고는 늙은 신하가 자진을 시도하는 대목이다. 물기 없는 문장이 발하는 서릿발 섬광에 독자들의 망막이 아리다.

소설 <남한산성> 은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당시 철저히 고립된 남한산성에서 펼쳐졌던 참담한 47일을 되살려 내고 있다. 살은 허구지만, 뼈대는 엄정한 기록에 따른 사실이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고, 청병의 본진은 삼전도에 있는데, 수령과 군사는 성 안으로 들어왔다.”(52쪽)

감정의 틈입을 봉쇄하는 단문과 단문 사이에서 파란 불꽃이 인다.

대륙에서 달려온 청나라 황제 칸이 조선 왕에게 보낼 투항 권유 문서의 문체를 지시하는 말은 이 소설 전체의 ‘직설적’ 표정에 와닿는다. “말을 접지 마라. 말을 구기지 마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바로 그 ‘스트레이트함’을 무기로, 소설은 과거를 파헤친다.

기이한 적막과 처연함, 혹독한 추위와 고립, 버텨냄에 대한 피의 기록이다. 항복을 주장하는 최명길과 항전을 고집하는 김상헌 간의 치열한 대립 과정은 국회 속기록을 보는 듯 하다. 작가 김훈(59) 씨는 그를 두고 “역사의 장관”이라 했다.

결사 항전의 명분론과 항복을 주장하는 현실론 사이의 치열한 대립, 칸이 머무는 삼전도까지 가서 그 앞에서 삼배의 예를 올리는 조선 왕, 단 아래로 오줌을 갈기는 칸 등 사실과 역사적 상상력을 종합해 작가가 재현한 현장은 익모초 맛이다. “임금이 이마로 땅을 찧었다. 구부린 임금의 저고리 위로 등뼈가 드러났다. 비가 등뼈를 적셨다. 임금의 어깨가 흔들렸고, 임금은 오래 울었다.”

칸에게 줄 승복 문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굴욕을 피해보려 신하들이 보여준 행위들은 누란의 조선을 지탱한 내면적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생각케 한다. 곤장을 맞고 몸이 망가지는 대신, 그들은 후세에 오명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주전파들은 “(투항을 요구하는)적의 사신을 목 베고 그 머리를 국경에 효수하여 황제를 참칭한 죄를 물으시고 대의를 밝”히라며 피를 토했다.

소설은 실제 자료에 의거한다.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 현장을 수시로 답사하는 한편 경기도 광주문화원에서 관련 자료를 복사해 연구하기도 했다.

성 안팎 상황의 편차가 지나친 기록의 한계를 떨쳐 내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관련 서신을 관련 학자들과 함께 면밀히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소설의 집필 기간은 7개월. <칼의 노래> 가 2개월, <현의 노래> 가 한 달 걸렸던 것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소설은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세계의 바탕은 이성과 자유에 대한 열망보다는 악과 폭력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병자호란처럼, 또 지금까지도 약육강식의 현실은 그 결과 아닌가. 결코 승복할 수 없으면서도 말려들어가는 게 인간의 비극이다.” 그는 “역사 이야기는 이제 단편으로 생각 중”이라며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의 내면을 전하고 싶다”고 후속 작업에 대해 내비쳤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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