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고도 참담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없었다면 국내 분위기는 잇따른 대규모 국제스포츠 행사 유치의 흥분된 여운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대구시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1년)를 극적으로 따낸 데 이어 인천시도 아시안게임(2014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7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2014)이, 11월에는 여수 세계박람회(2012년)의 성사 여부가 결판난다. 두 행사도 유치 가능성이 높아 또 한번 샴페인을 터뜨리게 될지 모른다.
한국이 국제대회 유치에서 이렇게 '발군의 기량'을 보이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 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유치에 발벗고 나서는 뜨거운 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여수를 방문한 세계박람회 실사단은 가는 곳마다 거리를 메우고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인파에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갔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라고 했다. 대회 유치를 위해 발벗고 뛴 모든 관계자들의 노고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 대구 인천 이어 평창에도 기대
하지만 이 시점에서 국제대회 유치가 무조건 좋은 일인지는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대회 개최의 경제적 효과를 짚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조그만 노점을 차리더라도 손익을 따져서 결정하는 법이니 수 천억~수 조원이 투자되는 국가행사에 대한 치밀한 경제성 분석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유치 열기에 파묻혀 냉정한 손익분석에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최측도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을 홍보할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산이나 부가가치 유발효과를 마치 대회 유치에 따른 순익인 양 선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 아시안게임의 경우 생산유발 효과가 13조 여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5조 6,000억원으로 조사됐다.
여기서 생산유발 효과란 생산단계별 매출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축구경기장을 지을 경우 모든 원자재 공급회사와 건설사, 시설운영사의 매출을 중복 계산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 유발효과 역시 최초 투입된 비용이 생산 단계마다 추가된 가치를 모두 합친 개념이다.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려면 투입된 비용대비 편익을 비교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편익만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혼란이다.
대규모 스포츠 대회가 오히려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많다. 대회 개최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지만 수입은 제한적이고, 대회가 끝나면 시설 유지에도 또 돈이 들어간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당시 지은 경기장 10개는 서울 상암경기장을 제외하고 매년 막대한 적자가 쌓이는 형편이다. 관광효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구시는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했지만 그 해 관광객 숫자는 전년보다 감소했다.
물론 경제효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소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88올림픽은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세계인의 뇌리에 깊이 인식시켜 한국 상품에 대한 간접적 홍보효과가 막대했다. 2002년 월드컵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고, 민족적 긍지를 느끼는 정서적 효과가 지대했다.
국제대회에 매달리는 주민 심정도 이해된다. 그나마 이런 대회라도 유치하지 않을 경우 지역경제가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정말 심각한 국가적 현안이다. 수도권으로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은 갈수록 도를 더한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뜨거운 염원은 그래서 절규에 가깝다.
● 부정적 영향도 총체적 계산을
그러나 경제적 효과란 기회비용까지를 포함해서 총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당장 경기장을 짓고, 도로를 깔면 지역에 돈이 돌겠지만, 사전 준비와 사후 관리 비용까지를 포함해 손익을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편익은 극대화하는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화려한 대회보다 검소한 대회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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