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빔버 지음ㆍ이원태 옮김 / 삼인 발행ㆍ496쪽ㆍ2만원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대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다. 이런 파천황의 시대에 정치의 변모를 예측하는 일은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의 공통 과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저자는 정보 기술이 정치 조직이나 집단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이 책은 건국부터 현재까지의 미국 역사 속에서 정보화와 정치의 관계를 조망한 저자의 대표작이다.
저자는 18세기 후반 미국이 탄생할 때부터 정보 문제가 정치의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건국 초기 연방주의 논쟁부터가 정부가 정보를 얼마만큼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었다는 것. 반연방주의자들은 효율적 통치를 위해 중앙정부가 정치 정보를 독점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연방주의자들은 지방-중앙 간 정보 균형이 사회통합에 유리하다고 봤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이어 저자는 ‘정보 혁명’이라 부를 만한 정보유통 기술의 단계적 발달을 기준으로 미국사를 4개의 ‘정보 레짐’ 시기로 구분한다. 정보 레짐은 정보 혁명의 영향으로 형성된 정치권력 구조를 가리킨다. 1차 레짐(1820~1880)은 우편ㆍ신문의 발달로 인한 중앙집권적 정당의 성장으로 특징지어진다.
이후부터 1950년까지는 산업혁명과 연방주의의 성장으로 이익집단 활동이 왕성해지는 2차 레짐 시기다. 1998년까지는 3차 레짐으로 구분된다. 이 시기엔 텔레비전을 위시한 방송매체가 발달하면서 정당정치 대신 대중정치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양상을 보인다.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으로 미국 정치는 바야흐로 4차 레짐 시기를 맞았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치 체제를 ‘탈관료적 다원주의’ 시대로 규정한다.
기술 변동으로 풍부해진 정보가 정치를 탈관료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세력 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전국적 연대를 구축한 환경단체의 시도나, 총기 규제 정책을 지지하며 10만여 명에 달하는 시위대를 조직했던 ‘백만 어머니들의 행진’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고 저자가 인터넷 시대의 정치를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의 양적 증가로 인해 정보 가치가 되레 하락하는 ‘칩톡 효과’와 정보 피로감이 발생하고, 정치사회적 요구가 조직되지 못하고 파편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인터넷 이용 증가가 정치 집회 참석, 선거 참여 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실증적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칫 인터넷이 편협한 이익 정치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을 ‘인터넷 강국’ 한국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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