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참사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미국사회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재미동포 사회의 우려와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19일엔 사건 관련지역인 워싱턴과 버지니아주, 동포 밀집지역인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근거 없는 ‘보복사건’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등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날 뉴욕타임스 등은 재미동포 사회의 불안감을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피해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최근 나돌고 있는 유언비어는 “센터빌 한인 슈퍼마켓 앞에 ‘코리언 고 홈(Korean go home)이란 플래카드가 걸렸다더라” “밤새 애넌데일 한인 제과점 유리창이 박살났다더라”라는 것 등이다.
또 “한인들에 대한 보복공격에 대비해 애난데일 경찰들이 완전 무장을 했다던데…”하는 얘기도 돌고 있다.
센터빌은 조씨의 집이 있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소도시지만 해당 슈퍼마켓 관계자는 “그런 일없다.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 했다.
워싱턴 인근의 애넌데일 제과점 직원도 “여기저기서 유리창이 깨졌느냐고 물어오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영업도 평소와 다름없이 잘되고 있는데…”라고 의아해 했다. 애넌데일 경찰 무장설도 낭설로 확인됐다.
이밖에 “백인 학생이 한국 학생 얼굴에 침을 뱉었다더라” “한국 학생들을 보고 고함을 질러 울었다더라” 등 동포 자녀 학생들에 대한 소문도 그럴싸하게 나돌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한국산 자동차들이 누군가에 의해 무더기로 파손됐다는 얘기도 나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로스앤젤레스 등 한인 밀집지역에선 아예 한인타운에 가지 말라는 얘기가 나오고, 자녀 등하교를 부모가 직접 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타임스는 “9ㆍ11 테러 이후 아랍계 미국인들이 겪은 고초를 목격한 미국 내 한인들이 이번 일로 발생할 수 있는 편견에 대한 걱정으로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며 “특히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사태의 후폭풍과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우려와 불안감이 재미 한인사회 뿐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과 국내 정치ㆍ종교계 지도자들의 위로 메시지 등을 사례로 들었다.
신문은 “정책 결정자들은 이번 참사가 한국의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노력은 물론 한미 관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도 썼다.
한편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국인에 대한 책을 펴낸 마이클 브린을 인용, 버지니아공대 참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집단적 책임관념’으로 풀이하면서 “이런 민족주의적 반응은 때론 집단적 배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타임은 ‘집단적 배척’의 사례로 2002년 발생한 미순ㆍ효순양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감정을 예로 들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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