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ㆍ남경태 옮김바다출판사 발행ㆍ전3권 각권 669~851쪽ㆍ각권 2만8,000~3만원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비잔티움의 역사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간직했던 모든 미덕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레키는 한 발 더 나아가 ‘성직자, 환관, 여인들의 음모와 독살, 반역, 배신과 친족 살해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문명세계에서 가장 경멸스러운 역사’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서유럽 사학자들이 이같이 혹평한 것은, 동방의 비잔티움을 로마제국의 계승자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비잔티움의 역사는 그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영국의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대답은 그와 반대다. 비잔티움이야말로 로마의 계승자이고 비잔티움이 없었다면 서구 문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무적의 로마제국이 위기로 치닫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눈 때가 293년이었다. 그를 이은 콘스탄티누스는 330년 제국의 중심을 아예 동방으로 옮겼으니 이것이 동로마 즉 비잔티움 제국이다.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때까지 1,123년을 지속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존재한 제국이다. 그 기간 동안 비잔티움은 서유럽의 보전과 문명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비잔티움은 셀주크투르크가 10세기 무렵 중동의 패자로 떠오르자 물리력, 외교술을 동원하고 공물과 영토를 바쳐 그들의 진격을 저지했고 그 덕에 서유럽은 12세기에 십자군을 조직, 역공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학문과 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 문명과 게르만 문명이 결합해 서유럽 중세 문명이 형성됐다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 그 문명에서 그리스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중세의 서유럽은 그리스의 학문 예술 사상과 고대 민주주의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대철학자도 잘 몰랐다. 그에 반해 비잔티움 제국은 7세기부터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스스로를 그리스의 계승자로 불렀다.
이슬람 제국이 9세기 무렵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들자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사상이 이슬람의 수학, 과학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비잔티움 제국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 학문의 중심이 된다. 비잔티움이 없었다면 서유럽의 중세 문명, 나아가 14세기의 르네상스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비잔티움이 서양 역사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지만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는 그런 비잔티움을 외면해왔다.
<비잔티움 연대기> 는 제국의 성립에서부터 번영, 멸망에 이르기까지 비잔티움 천년의 역사를 재연한 책이다.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콘스탄티누스, 기독교를 배척하고 이교를 부활하려 한 율리아누스,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려 한 유스티니아누스, 매춘부에서 황후의 자리에 오른 테오도라, 비잔티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 벨리사리우스,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해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비잔티움>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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